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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는, 어머니회 2화
입력 2011-07-08 오전 7:13:16
월간경제노트구독
돌보는 어머니 회라는 생각을 한 지 근 2년이 지났다.
 
인생 목표로 거창하게 잡지는 못해서인지, 제대로 실천이 되지 않았다...고 보기엔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다.
 
나는 분당 어머니들과 휩쓸려 문화센터에 다니다,
걸음마도 떼지 않은 아이들에게 원어민 교사로 소규모 수업을 꾸리자는 제안에 펄쩍 뛰었다.
그들은 나를 한바탕 훈계했고, 초기투입비용-효과 면에서 투자를 하라는 개념을 주입하려 했으나 나는 그걸 이해하지 못했고, 그들의 생활수준과 내 생각의 방식은 접목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엄마들은 인공적인 맥락에서 어설프고 시끄럽게 외치는 영어단어들을 아이들이 듣고 멍하게 서있는 프로그램에 열광적이었다. 같이 다니려고 끊었다가, 참을 수가 없어서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옆 집 주변 엄마와 상가를 하나 빌려서 같이 키워 볼 것을 제안했다. 비판적-비관적이었다. 
첫째, 비용이 어린이집만큼, 혹은 더 든다는 점과, 보증금문제.
둘째로 그 상가의 위치가 경사진 1층이어서 2층과 같았고 화장실 위치가 문제였으며,
셋째, 엄마들은 아이를 맡기고 싶어하지 아이를 같이 하루 종일 보는 일을 하면서 돈을 지불할 사람이 있겠냐는 것이었고,
넷째, 어떤 식으로 인허가를 받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불분명하다는 것이었다.  
 
보증금이나 상가 화장실 위치등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인허가 역시 카페 형식으로 하면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엄마들의 편의를 위한 서비스와 그냥 공동으로 육아를 더 잘 해보자는 취지의 분업은 경쟁이 되지 않았다.
엄마들은 카페에서 편안하게 아이를 놀리면서 자신이 쉬고 싶어하면 키즈카페로,
아이를 잠시 맡겨두고 집안일이나 둘째를 보기를 바라면 어린이집으로, 아이들을 보냈다.
 
맞는 말이라고 여겨졌고, 부동산을 들락날락 거리며 아저씨와 이야기도 해 보았지만
그다지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거라는 말을 들었고,
현실적인 남편 역시 지지적이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차라리 자격증을 따서 어린이집을 열어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애를 업고 혼자서 시민사회단체에서 여는 아이디어 공모에도 참가를 했다. <'육아정'을 만들자.>
아파트에는 노인정은 있지만 육아정은 없다. 그걸 의무화를 시키자.
엄마들이 쓸 수 있게 시설을 갖추어 놓고 믿고 아이들을 서로 키울 수 있도록 하자.
 
그러나 아이디어는 소셜미디어나 앱과 연관이 있어야 했으므로 공동체 연결 서비스 등으로
두루뭉실하게 제안되어 그룹에서 제대로 구현이 되지 못했다.
그 곳은 미혼인 젊은이들이나 성인 남자분들이 많이 있던 곳이어서, 애엄마의 간절함을
그렇게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를 와서 광명 철산에서 윗집 엄마와 어울려 육아를 같이 해 보기로 제안했다.
하지만 어린이집이 주변에 널려있었고(옆 대단지 아파트 안에는 어린이집이 11곳이 있었다)
 
결국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론을 내린 쌍둥이를 임신한 윗집 엄마는
매번 심리적인 고통을 호소는 하지만 더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요즘은 적응을 잘하는 자기 딸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우리 아들 역시, 어린이집에 다녀왔다. 그리고 전염병이 돌아 아프면서 그만두었다.
그 어린이집은 엄마들이 오래 맡기고, 좋은 평을 가지고 있었고, 생협의 좋은 식재료를 쓰는 곳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들은 그쪽 규칙을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음식을 뱉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아들은 지금도 못 씹어내는 고기같은 걸 뱉지 않고 물고 있는다. 내가 뱉으라고 해야 겨우 뱉어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우리 아들은 앞니 윗니 네 개를 치과에서 새 이빨로 해 넣어야 했다. 내가 이를 잘 닦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치과치료를 간헐적으로 받는데, 공포스럽다. 나는 평생 이렇게 내가 아들에게 고문같은 일을 행할 지 몰랐고, 그럼에도 아들에게 아직도 이를 잘 못닦인다. 싫다고 굳이 저렇게까지 난리를 치는 녀석에게 더이상 입안에 뭘 집어 넣는 것이 두려웠다.
 
이렇게 저렇게 힘든 일을 겪고 난 뒤 엄마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자격지심에 시달렸다.
주변 엄마들이 건네는 몇마디 화살같은 말들도 일조를 했다.
나처럼 먹는 것을 캐주얼하게 생각하는 엄마들이 별로 없었다.
 
다들 무언가 더 먹이지 못해 안달을 하고 있었고,
내 아이가 누구보다 키가 크면 내가 무얼 먹였는지 알아내야 했고,
내 아이가 누구보다 밥을 잘 받아먹으면 혹시 애를 굶겼냐고 물어보았다.
엄마들의 대화는 정말로 진이 빠질 정도로 경쟁과 비교 일색이었다.
 
아이가 말을 한마디 더 하는 것에 대해서, 내가 아이에게 불러주는 노래에 대해서,
아이에게 신긴 신발에 대해서, 혹은 간식에 대해서, 비교 거리는 끝이 없었다.
그러면서 오가는 말들도 너무나 무서웠다. 아이에게 하는 말도 거리낌이 없었다.
이건 어느 한 명의 엄마가 아니라, 모든 엄마들이 거의 다 그랬다.
나는 점점 어머니들의 공통분모를 찾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절감했고,
얼마나 그들이 온갖 정보를 가지고 의견이 분분한지에 대해서도
그들이 얼마나 죄책감과 불안감을 가지고 아이를 대하는지에 대해서도 느꼈다.
 
정말로 필요한 누군가가 있어야 했지만
아무도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어주지 못했다.
아이들은 상품과 프로그램과 캐릭터들과 서비스의 대상으로 키워지고 있었다.
정말로, 아이들은 이미 아이들이 아니었다.
 
돌보는 어머니 회에 대한 나의 이념과 사상은
이렇게 거의 꿈 해몽 수준에서 더이상 진척이 되질 않았다.
아이들을 기른다는 것에 대한 여러가지 다른 생각은 갈무리가 되지 않았고
자신만만한 엄마들과, 온갖 브랜드들,
그들이 내미는 추측하기도 어려운 여러가지 정보들을 보면서
입을 다물기 어려웠다.
 
내게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들에 이미 나는 고통스러웠다.
내가 그 모임을 만들어 놓고 실수 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지, 끔찍했다.
육아는 이미 돈과 물건, 여러 서비스업체에게 팔린 세계였다.
전문가들은 같은 지시를 계속 내리고 있었고,
거기에 맞추지 못하는 엄마들은 거기에 맞추기 위해서 용을 썼다.
 
책자들은 보는 것마다 죄책감을 떨치지 못하게 만들었고,
점점 프로그램화 된 시간표에 맞추어 아이를 기르고,
때가 되면 무언가 일관성있게 해나가야 했고,
아이와 소통하라고 하면서도 결국엔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라고 말했고,
나는 정보를 알면 더 알 수록
내가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뿐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나다니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아이를 만지고 좋아하다가도
아이가 울면 눈총을 주고, 아이와 함께 하고 있으면
나를 아이 다루듯이 대했다.
비행기에서 받은 눈총이며 몰래 수유하기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이와 버스 지하철을 타고 다니기는 정말로 힘들었다.
운전? 그것도 죽을 뻔 한 적이 여러 번이다.
나는 아이에게 일관성 있게 카시트에 앉히기를 잘 못했던 것이다.
 
곁의 이야기들도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아이가 반팔을 입고 있으면 너무 춥게 입혔다고,
아이가 긴 팔을 입고 있으면 너무 덥게 입혔다고,
아이가 뭔가를 묻히고 있으면 쯧쯧거렸고
아이가 고집을 부리고 있으면 자기 아이에게 넌 저렇게 나쁜아이가 되고 싶으냐고
마트 바닥에 누워있는 내 아들을 가리키며
그렇게 물었다.
 
정말로 불편했고ㅡ 점점 집 안에 고립되어갔다.
나는 서투르고, 아이도 서투르고,
뭔가 제대로 되어가는 것도 없고,
남편은 이해를 못하고,
부모님은 너무나 멀리 계셨고 자신의 일에 바쁘셨다.
우리가족은 핵가족이었고,
나는 심리학공부며 인간발달에 대해 5-6년째 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대체 이론은 실전에 가서는 아는 것이 더 병이 되었다.
차라리 몰랐다면 주관적으로 키울 수 있었을 텐데
 
이럴까 저럴까 발만 동동구르며
전문가들의 책과, 의학사전과 인터넷의 글줄들 사이에서
희망을 찾아보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두 돌이 지나갔다.
 
 
 
 
 
 
 
 
 
 
 
 
 
 
 
 
 
입력 2011-07-08 오전 7: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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