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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오락 영화 일반글
영화 "21그램" - 영혼, 인생,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입력 2011-08-04 오후 11:02:29
월간경제노트구독
최근 나오미 왓츠와 숀팬이 주연한 영화 "페어게임"을 보고
얼굴도 예쁜데 연기까지 잘하는(^^) 나오미 왓츠에게 관심이 갔습니다.
("연기도 잘하면서 얼굴까지 예쁜"이라고 표현하지 않는 나의 속물 근성에 양해 바람^^)
 
그래서 그녀가 출연한 영화를 좀 골라보다가
멀홀랜드 드라이브 라는 영화로 그가 알려지기 시작했다기에 먼저 봤습니다. 
세간의 평은 천재감독이라지만
머리나쁜 나같은 인간에게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기분이 찝찝한 영화였습니다.
거기에 출연한 나오미 왓츠에게는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상의 미학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녀는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영화에 몰입하지 못했기 때문일수도 있지만요.
 
그 지저분한 느낌이 채 사라지기 전에 "21그램"을 보게 됐습니다.
21그램은 영혼의 무게라고 합니다. 모든 이들에게 동일한.
밀란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슴이 아픈 영화였습니다.
볼 때도 너무 마음이 아팠고 보고 나서도 마음이 아픕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마음이 아립니다. 
 
나오미 왓츠가 남편과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글썽일 때는 정말 너무 슬펐습니다.
베니치오 벨 토로가 살인자로서 감옥에서 있을 때 이 모든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했을 때 마음이 아팠고
그가 거울을 보며 자신이 죽인 아이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글썽일 때,
숀팬이 장기이식 부작용으로 죽음을 선고받을 때, 
자신의 심장에 총을 쏠 때
나도 영화속 그들과 같이 아파했습니다.
 
언뜻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밀양처럼 어떤 기독교의 이율배반적인 부분을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핵심 주제는 아니지만 그 옆을 배회합니다. 
그래서인지 기독교인인 나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영화는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랜덤으로 섞어서 편집이 되었기 때문에
끝까지 보기전에는 이야기의 흐름을 정확히 잡기 어렵습니다.
만약, 이 영화를 시간의 흐름대로 흐르게 했다면 매우 지루한 영화가 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편집자는 이 영화를 지루하게 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시간의 흐름을 섞어 놓았고, 그 효과는 어느 정도 발휘가 되어서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의 전체 내용을 자꾸 추리하게 만듭니다. 덕분에 덜 지루하게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 글은 이야기의 내용을 다루기 때문에 영화를 보실 때 재미없어질 우려가 다분히 있으므로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
 
이 영화는 매우 적은 인물이 이끌어갑니다.
 
1. 잭(베니치오 벨 토로) : 이 이야기의 근본 원인을 제공한다. 자동차로 아빠(마이클)와 딸 두명을 치어 죽이고 뺑소니친다. (나는 이 영화에서 이 사람을 가장 좋아한다. ) 
2. 크리스틴(나오미왓츠) : 자동차에 치어 죽은 아빠와 두 딸의 엄마, 나중에 교통사고자인 잭을 죽이고 싶어한다.
3. 폴(숀팬) :  자동차에 치어 죽은 크리스틴의 남편 마이클의 심장을 이식받고 살아난 교수, 남편을 읽은 크리스틴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사랑하며 결국 크리스틴의 소원대로 잭을 죽이려고 한다.  
 
결국 이 세명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엔딩에는 감독, 시나리오 작가, 그 다음 숀팬, 베니치오 벨 토로, 나오미 왓츠순으로 가장 앞 부분에 나옵니다. )
 
1. 잭은 감옥에 자주 드나들었던 범죄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신실한 기독교인이 됩니다. 그리고 더이상 술을 먹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는 매우 신실한 기독교인이 되어서 성경을 술술 읊어대고, 두 남매 아이들에게도 성경적인 삶을 강요합니다.
그는 트럭을 경품으로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트럭은 주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그 트럭에는 예수님과 십자가, 믿음 이라는 문구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차를 몰고 가다가
외식을 하고 집에 있는 아내(크리스틴)에게로 돌아가려는 한 남자(마이클)와 두 딸아이를 차로 치게 됩니다.
그는 차를 그대로 몰고 집으로 도망갑니다.
병원에 늦게 도착한 그들 3명 모두 죽었습니다. 여자아이 하나는  바로 병원으로 데려갔으면 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집에서 있다가 말리는 아내를 뒤로하고 이모든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말하며  결국 스스로 경찰서를 찾아가 자수합니다.
감옥에서 그는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자신에게 차를 선물해주고 결국 그 차로 행복한 한 가족을 죽이고
정말 새롭게 술도 끊고 아주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는 자신은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람을 죽이고 도망쳤다는 사실에 괴로워합니다. 그리고 변호사를 고용하겠다는 아내를 말리고 감옥에서 나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목을 메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낡은 파이프가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그것조차 실패합니다. 그는 아내가 고용한 변호사로 인해 출소하지만 가족의 곁을 떠나 혼자 육체노동을 하며 살아갑니다. 
감옥에서 자신을 버린 하나님에게 실망과 배신을 느끼고 절망하는 잭에게 아내는 말합니다.
"주님이 있던 없던 삶은 계속되요"
 
  2. 크리스틴은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 덕분에 마약을 끊고 건강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중 남편과 아이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오열하고 괴로워합니다. 그리고 남편이 곧 죽을 것을 들은 그 시간에 장기기증을 권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서명합니다. 그는 장례식장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죽인 잭에 대해 어떤 고소등의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합니다. 그런다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다고 하면서. 그러나 그녀는 너무 가슴아파하고 사람을 만나지 않는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괴로움으로 인해 마약을 다시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폴을 만납니다. 자기에게 진심으로 대해주는 그를 처음에는 거부하지만 결국 그를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마약을 하지 못하게하는 그에게 바로 치료를 받았으면 살 수 있었던 자신의 딸을 버려두고 도망쳤던 잭을 죽이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녀에게는 삶의 희망이나 의욕이 없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의 장례식장에서 괴로워하는 그녀에게 아빠가 이렇게 말합니다.
 "애야 삶은 계속된단다."
 
3. 폴은 곧 죽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죽은 크리스틴의 남편의 심장을 이식받아 새로운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는 자기에게 장기이식을 해 준 사람을 찾습니다.  그 사람이 사고로 아이들과 함께 죽고, 그의 아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그녀에게 접근하고 진심으로 사랑을 키워갑니다.  그는 그녀의 남편이 죽어서 자신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괴로워합니다. 자신이 그녀의 남편인 마이클의 심장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어느날 그는 구토와 함께 심장의 통증을 느끼고 의사를 찾아갑니다. 의사는 그에게 장기이식의 부작용이며 , 다른 사람이 죽기를 기다려 장기이식을 다시 받거나, 병원에 입원해서 조금덜 고통스럽게 죽거나,  입원하지 않으면 어느날 갑자기 극심한 고통과 함께 심장마비로 죽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폴은 그녀와 함께 잭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폴은 잭을 죽이러 갑니다. 폴은 잭을 죽이지 않고 위협발사를 몇 발 하고 그에게 떠나라고 합니다. 폴은 돌아와 크리스틴에게 자신이 잭을 죽였다고 말하고 시체는 찾지 못할 곳에 버렸다고 말합니다. 폴은 가슴의 통증에 힘들어합니다.
심장이식을 받기전 곧 죽음을 앞 둔 상태에서 동거녀인 메리가 자신의 아이를 원해서 임신클리닉의 의사를 찾아갔을 때 의사가 폴의 상태가 아이를 못 볼 수도 있다고 말하자 폴이 이렇게 말합니다.
"음..그래도 삶은 계속되죠"
 
밤에 누군가 폴과 크리스틴이 묵고 있는 모텔로 옵니다.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잭입니다. 그리고 폴에게 자신을 죽이고 싶으면 죽이라고 말하며 총을 자신의 목에게 갖다댑니다. 그러나 폴은 그를 죽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크리스틴은 잭을 몽둥이로 내려치며 죽으라고 합니다. 그것을 보고 있던 폴이 총으로 잭이 아닌 자신의 심장을 쏩니다. 크리스틴과 잭은 폴의 차에 함께 타고 폴을 병원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피를 많이 흘린 폴을 위해 수혈을 해주려던 크리스틴은 자신이 폴의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은 죽어도 자신의 아이를 통해서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작가의 의도-결코 긍정적인 의미만은 아닌, 오히려 지난한 삶이 계속된다는 의미가 더욱 느껴지는-로 판단됩니다. 앞에서 아이를 볼 수 없다는 의사에게 폴이 했던 말과 같은 의미)
 
그리고 폴의 병실 바깥에서 지켜보는 크리스틴과 잭이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그들 사이에는 암묵적 화해가 이루어집니다. 같이 한 사람 폴을 살리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오는 동안, 그의 병실을 지키고 있는 동안 그들 사이에는 자신들을 위해 스스로의 인생을 버린 폴로 인해 마음이 풀어졌을 것입니다.  
폴은 크리스틴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싶어서 잭을 죽이는 시늉을 했고, 또한 자신을 죽이려는 크리스틴에게 맞고만 있는 잭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심장을 쏘았습니다. 영화에서는 이 부분이 그런듯 만듯 스쳐가기 때문에 암묵적 화해가 이루어 진 것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잭이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장면과 크리스틴이 방에서 꽃을 들고 있는 모습을 통해서 잭에게는 살인자라는 죄책감의 치유가, 그리고 크리스틴에게는 임신으로 인해 가족을 읽은 상실감의 치유를 암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너무 스치듯 다룬 부분이 많이 아쉽습니다.
 
 
병원에 누워 의식을 찾은 폴이 말합니다.
"이곳은 죽음의 대기실인가?"
"예비사망자 클럽에서 난 뭘하고 있는거지?'
"언제 더 이상의 시작이 없을까?"
"또는 언제가 끝일까?"
 
이 대사는 마치 인생을 결국 모두다 죽음을 향해 가는  "죽음의 대기실" "예비사망자 클럽"으로
시작과 끝을 언급함으로 인생의 아픔과 지난함을 말하고자 하는 듯하다.
 
작가는 영화를 통해 삶의 아픔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하는 인생의 지난함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듯 보이지만, 그러나 마지막을 해피엔드로 끝냄으로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삶은 아픔의 연속이지만, 삶은 계속되며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  
 
 
                                                           2011.08.04 늦은 밤에 사무실에서.
 
 
 
 
 
 
 
 
 
 
 
 
 
 
 
 
 
 
 
 
 
 
 
 
 
 
 
 
 
 
입력 2011-08-04 오후 11: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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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ebs에서 어제 했는데 .. 졸려서
못봤는데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2014-02-09 오전 6: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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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ebs에서 어제 했는데 .. 졸려서
못봤는데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2014-02-09 오전 6: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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