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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역사 리뷰
너무나 인간적인 마키아벨리
입력 2012-01-16 오후 2:52:39
월간경제노트구독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 르네상스 저작집 7
시오노 나나미 지음, 오정환 옮김 (한길사)
2012년 대선 대통령을 선택하기 위한 최우선 사항은 바로 ‘정직’이라고 한다.
마키아벨리 또한 정치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였다.
“정치란 인간의 본성에 뿌리 박은 ‘비르투스’의 문제다’
여기서 비르투스라는 라틴어로 ‘덕’이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마키아벨리는 ‘비르투스’에는 덕이라는 말 보다는, 역량, 재능, 기량과 같은 뜻으로 이를 사용 하였고, 그리고 나머지 항목도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비르투(역량,재능,기량)
포르투나(운,행운)
네체시타(시대의 요구에 합치하는 것)
 
마키아벨리를 떠올리면, 군주론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지도자를 한마디로 ‘권모술수’를 부리는 자, 즉 사자의 힘과, 여우의 교활함을 갖춘 자를 떠올리며 하는 말이다..
그리고, 군주론에서 인간의 본성, 약한자에게 강하고, 강한자에게 약한, 허약한 인간의 실체를 잘 꽤고 있기에, 나 역시 군주론이 정치가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로 추천 되는 것이 못내 못마땅 하다 못해, 마키아벨리에 대해서 좋지 못한 감정이 생겼었다.
그러나, 시오노 나나미의 이 책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읽은 지금,
아마도 마키아벨리는 바로 ‘네체시타’ 시대의 요구에 합치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바로 권모술수를 주장 하기에 이르지 않았나 하며 애써 그를 좋게 볼려고 노력 해본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시대는 어떤 시대 인가,
화합의 시대 이며 통합의 시대에 있지 않은가? 권모술수가 과연 먹힐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역시 군주론의 ‘네체시타’ 도 과거의 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정치서가 아닌가 한다.
어쨌거나, 이 책은 이런 군주론에 대해서 왈가 왈부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마키아벨리는 누구인가에 더 초점을 두며, 한 인간으로써 그를 그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말처럼, 그의 사상을 이해 하느냐와 않느냐가 그를 이해 하느냐와 연관 되기 때문일지 모르기 때문 이다.
마키아벨리는 대학을 나오지도 않았고, 또한 대학에 들어갈 만한 재능도 갖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을 ‘나는 학문이 없는 인간이다’라는 말을 손수 써서 남길 정도로 말이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저렇게 말할 정도로 자신감에 차여 있는 인물 이기도 한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의 발생지인 피렌체에서 문화, 예술, 그리고 참신한 생각들이 마구 꽃피운 시대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문화를 꽃피운 메디치가의 로렌초가 죽은 후, 그 뒤를 이은 지도자들은 무능 했으며, 또한 더 이상 피렌체와 같은 도시 국가가 스스로 자립해 나가기에는 좋지 못한 국제 정세 속에 있었다.
왜냐하면, 이미 열강이 되어버린, 프랑스, 스페인, 터키와 같은 전제 군주 체제의 국가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좋지 못한 시대적 상황에, 대학도 나오지 않은 마키아벨리는, 순전히 그의 능력을 인정 받아 피렌체 공화곡 제 2 서기국의 서기관에 임명된다.
이 직책은 관직이라고는 하나 고위직은 아니 었으며, 또한 대학 출신자가 아닌 것도 일조 하여, 그는 자신의 능력에 비해서는 좋은 대우를 받고 일 하지는 못한다.
마키아벨리의 성향으로 말하자면, 재취 있고, 뛰어난 관찰력과, 예시력을 겸비 하였다고는 하나, 행동에 있어서는 품위가 없고, 점잖을 빼는 성격이 아니고, 또한 참을성이 있는 편도 아니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마구 떠들고 놀기를 좋아 하다 못해, 이튿날 친구들에게 볼 면목도 없는 일이 생길 정도로 어디까지나 쾌락적이고 장난가 였다.
그렇지만, 그는 확실히 독창적이고, 날카롭고 창의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오지랍 넓은 성격 때문에, 피렌체의 제 2국 서기관이 되어서도, 그는 서기관의 일 뿐만이나라, 보좌관, 또한 일종의 외교관 역할 까지 하느라 동분서주하는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피렌체가 지불하는 그의 급여는 정말이지 그의 능력으로 보나 일의 양으로 보나 형편 없었다.
마카이벨리가 군주론을 쓴 시기는, 이런 서기국의 서기관으로 해임 당한 시기이다.
그는 피렌체가 종신대통령을 취하기로 한, 소델리니 정권에서 일한 죄로, 다시 메디치가가 정권으로 복귀한 시기에, 해임을 당하고 하루아침에 그에게서 자신의 일에 비하면 1/3도 안되는 급여를 받았지만, 그마저도 해임을 당하고 무일푼으로 쫓겨나게 된다.
그리고 그때, 그는 마흔세 살 이었으며, 부양할 가족이 그의 아내를 비롯하여 5명이나 되었다. 면직 당한 것 뿐만 아니라, 약 10년치 급료에 해당하는 벌금 까지 받게 된다.
그는 고등 교육을 받지 않은 자로 취직도 쉽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는 피렌체 시내에서 추방 당하여 조용한 산장으로 견디기 힘든 생활고를 겪으며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게 된다.
이시기에 자유로운 영혼 이었던 마키아벨리는 가만히 있지 못한 할망구 기질을 버리지 못하고, 군주론을 질필하기 시작 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군주론을 누구에게 주어야 하나 고심히 고민 하면서, 아울러 다시 직장을 찾고, 피렌체 정부국에서 자신을 불러주기만을 학수 고대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그는 메디치가의 두 젊은이에게 이 군주론을 바치는데,
“이 작품을 저는 군주보다도 군주가 될 자격을 충분히 갖추어셨으면서도 군주가 아니신 두 분께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저에게 지위나 명예나 부를 줄 수 있는 분이 아니라, 그렇게 해주고 싶어도 그렇게 할 권력을 안 가진 분께 헌정하기로 하였습니다"라는 찬사와 함께 말이다.
복직의 희망을 언제나 품고, 언젠가는 자신을 능력을 인정 받아 불러 주기만을 기다린 마키아벨리를 떠올린다면, 왠지 지금 시대의 아버지들이 생각이나 가슴이 뭉클해 지는 장면이다.
어쨌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진가를 제대로 본 사람은 없었다.
마키에벨리가 죽은 후에도 오히려 금서로 낙인 찍혀 판매가 중지될 정도이다.
그가 죽고 나서 , 가난만 남아 있었으며, 그는 후세에 아들이 없어서, 심지어 그의 무덤 조차 잡초만 무성하게 남겨질 정도로, 그는 불운의 사나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마키아벨리는, 불우한 시대에 태어난 행운의 사나이라고 나는 생각 한다.
배운게 없었고 좋은 집안에 태어나지 못했기에, 오히려 얽메이지 않은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또한 확실히 그는 소박한 사람이다. 돈이나 명예 따위에 관심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저 그는 자신의 재능이 발휘 되기만을 기다릴 뿐, 또 어떤 위치에서거나 어떤 대우에서거나 ,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기 때문이다. 비록 서기관에서 면직 되었으나 그는 군주론, 정략론, 전략론, 그외 다양한 분야인 희극까지 저술하면서, 인생을 풍요롭게 보냈기 때문이다.
시오노나나미의 마지막 글처럼, 그는 이미 나의 친구가 되어있다. 너무나 인간적인 마키아벨리로써 말이다.
입력 2012-01-16 오후 2:5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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