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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중국 일반글
1박2일 2편 문상(汶上)편 치우의 묘 & 중국신화이야기
입력 2012-05-02 오후 4:16:00
월간경제노트구독

 

 

 

 

 

 

 

 

 

 

 

 

 

 

 

 

 

 

 

 

 

정류장을 빠져나오기 위해 몇번이나 전후진을 반복하던 버스가 후진기어의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마침내 출구쪽을 향했다. 웬만하면 연휴기간은 집에서 조용히 원칙을 지금까지 지켜왔는데 아니라 다를까 5.1절 휴무기간은 역시 움직이는게 아니었네요. 더구나 고속버스로는 절대 움직이는 게 아니었는데... 

55인승 버스를 80인승으로 만들기위해서 7시 30분에 출발시간으로 적혀있던 버스가 청도일대로 계속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10시가 되어서야 출발을 하게 되었답니다. 

한줄에 4명씩 앉아야 하는데 한줄에 7명씩 앉히더군요.  

도착을 하니까 오후 5시가 되었는데 아침 7시 30분부터 꼬박 9시간 30분 걸려서 도착을 했습니다 ㅠㅠ


 


 


 


 


 

중국 신화에서 가장 화려하고 장대한 전쟁 장면을 꽂는다면? 당연히 탁록에서 벌어진 황제(黃帝)와 치우(蚩尤)의 전쟁일 것이다 비와 바람을 불러오는 신 우사(雨師)와 풍백(風伯), 괴상한 소리를 내며 잿빛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비를 부르는 응룡(應龍), 푸른 옷을 입은 뜨거운 불덩어리의 여신 발(), 괴이하게 생신 온 세상의 도깨비와 귀신, 곰이나 표범 등 무시무시한 동물 돌격대들,

그리고 남부 지방의 반항적 민족인 묘족, 그들이 한꺼번에 모여들어 한판 승부를 벌였으니 그 장면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뛴다. 게다기 신들의 나라에서 중심의 위치에 있는 황제,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가진 치우, 이 용맹스러운 두명의 신이 벌이는 밀고 밀리는 싸움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제공해 주는, 참으로 흥미로운 소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신화 속의 전쟁을 바로 역사적 사건으로 인식하는 중국인들의 태도이다. 그럼으로써 생겨나는 문제점은 심각하다. 고구려의 역사를 두고 우리나라와 중국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도 그러한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황제는 본래 다섯 개의 방위 중에서 중앙을 다스리는 하늘나라의 신에 불과했다. 그런데 한나라 때 이후로 황제가 민족의 시조로 추앙되면서부터, 즉 황제가 화하족(華夏族), 지금 말로 하자면 중화민족의 시조로 받들어지면서부터 모든 중국의 역사는 황제(황제)를 위하여로 방향을 틀게 된다. 황제와 만만치 않은 싸움을 벌였던 치우는 중화 민족의 시조신인 황제에게 대항했던 주변부의 악신(악신)이 되어 탐욕스럽고 거칠고 야만적인 못된 신으로 역사서 속에 이름을 남기게 되고, 그 전쟁에서 승리한 황제는 중심에 자리한 선신(선신)이 된다.

전욱 역시 마찬가지이다. 신화 속에서 북방의 신으로 등장하는 전욱을 중국의 학자들은 지금의 요녕성 지역을 다스렸던 역사 속의 제왕으로 본다. 요녕성 지역을 다스렸던 전욱 고양씨(高陽氏)의 후예들이 한반도로 와서 고구려를 세웠기 때문에 고구려가 중국 역사의 일부라는 식의 해석을 제기하고 있는 형편이다. 중국 신화와 역사의 경계 문제에 대해 우리가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국가와 민족의 이름을 앞세워 신화를 역사로만 해석할 때, 그 폐해는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황제와 치우의 탁록 전쟁

 

황제와 염제의 전쟁  판천의 전쟁

 

염제는 성품이 자애로운 천제였다.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주고, 백성들이 병에 걸리면 몸소 약초를 찾아 병응ㄹ 고쳐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염제가 한번은 황제와 전쟁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판천의 전쟁이다.

황제와 염제가 전쟁을 벌인 이유는 대해서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지만 중원을 두고 서로 세려 싸움을 벌였던 황제와 염제의 영역분재잉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염제는 불을 장악한 신이었고 그에게는 신들의 전령이자 불의 신인 축융(祝融)이 있었다. 그리하여 화공법을 써서 황제를 공격했는데, 황제가 누구인가, 바로 뇌신, 천둥번개의 신이 아니었던가. 염제가 불을 앞세워 공격을 온다면, 비바람을 몰아치게 해서 꺼버리면 그만이었다.

염제 따위는 내 적수가 되지 않는다. 나의 용명스러운 선봉대를 불러오라.” 황제에게는 하늘의 신들로 이루어진 장수와 병사들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호랑이나 이리, 곰 등 사나운 맹수들로 이루어진 충성스럽고 용감무쌍한 선봉대가 있었다.

우리의 주인님, 지혜로운 황제시여, 부르셨나이까!”

불려온 것은 맹수들뿐만이 아니었다. 수리와 매, 솔개, 사나운 산새 등 맹금들 역시 당도했다. 힘이 넘치는 황제의 선봉대는 공격 깃발을 높이 들고 판천의 들판으로 달려갔다.

아니 저들은 누구란 말이냐?”

무시무시한 황제의 선봉대를 보고 자애롭기만 한 염제는 애초부터 기가 죽었다.

염제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모두 때려잡자!”

판천의 들판으로 몰려온 황제의 군사들은 기세등등하게 공격을 가했고, 염제의 군사들은 바엉조차 제대로 해낼 수 없었다.

도망쳐라, 병사들이여, 어서 도망쳐라!”

염제는 소리쳤다. 자신의 가엾은 병사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염제는 결국 남방으로 물러날 것을 명령했다. 황제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물러가거라, 염제여. 그대의 땅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다시는 주우언 땅에 발을 딛으려 하지 마라.”

염제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백성들이 전쟁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후퇴하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염제는 남방 한 구석에서 남방천제 노릇만 하며 조용히 살아가게 되었다.

 

염제의 후손, 용맹스러운 치우

 



 

 

월드컵 이후, 치우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 우리나라 축구팀 응원단인 붉은 악마가 휘두르는 커다란 깃발 속에 그려진 도깨비 형상의 신이 바로 치우였기 때문이다.

그라나 치우가 도대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재야의 사학자 중에는 그를 치우천황(蚩尤天皇)’이라고 하여 동이(東夷)의 위대한 조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치우가 붉은 악마 응원단의 깃발에 그려져 민족혼을 북돋우는 역할을 하게 돈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책에서 치우는 중화 민족의 위대한 시조인 황제에게 반항한 남방의 못된 신으로 묘사되어 있다. 물론 여기에는 이긴 자의 역사관이 당연히 개입되어 있다. 한편 중앙 남방 소수민족 중의 하나인 묘족 사람들도 치우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중화 민족이 시조에는 염제와 황제뿐 아니라 치우도 포함된다고 주장하면서 그들이 주로 모여 사는 귀주성(貴州省)에 치우의 성지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치우는 과연 누구인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들은 치우에 관한 중국의 기록에 근거한다. 치우는 염제의 자손이다. 그와 여든한 명(혹은 일흔 두명이라고도 한다)의 형제들은 모두 비길 데 없이 용감했다. 생김새부터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다. 머리는 구리로 만들어졌고 이마는 쇠로 되어 있었다. 몸은 짐승처럼 생겼으나 사람의 말을 했고 머리에는 단단하고 날카로운 소의 뿔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옆의 머리카락이 칼처럼 뻣뻣하게 서 있었다. 어떤 전설에서는 팔다리가 여덟 개나 되었다고 하기도 하는데, 이런 것들은 중심을 대표하는 황제에게 대항했던 주변의 신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이상한 괴물 혹은 악한 신의 모습으로 묘사하려 한 끝에 나온 얘기가 아닌가 한다.

여기에서 하나 특이한 것은 치우의 머리에 쇠뿔이 달려 있다는 점이다. 치우가 소의 머리를하고 있었던 염제의 후손이니만큼 쇠뿔을 달고 있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네 재미있는 것은 지금의 남방 귀주성 쪽에 모여 살고 있는 묘족들의 차림새이다. 그들은 은장식은 세계적으로 이름나 있거니와 묘족 여인들은 몸을 장식할 때 은로 된 장신구들을 온몸에 주렁주렁 매단다. 그리고 머리에는 커다란 은 장식품을 쓰는데, 그 모자가 바로 쇠뿔 모양이다. 양쪽으로 멋지게 솟아오른 쇠뿔모양의 은 장신구를 머리에 얹어야 그들의 복식이 완성된다. 그러니 묘족 사람들이 치우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기는 것과 그들이 쇠뿔 모양이 은 모자를 쓰는 것 사이에는 중요한 관련성이 있는 듯하다.


(내 생각: 고구려 군인들의 투구는 늘 쇠뿔 모양의 장신구가 달려 있었고 고구려는 자신들이 치우천황이 다스리던 나라 구려국의 후예임을 믿었다.)

한편 생김새가 특이했던 만큼 치우는 먹성도 특이해서 모래나 돌, 쇳덩이 등을 주식으로 삼아 매일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무기를 만드는 데 빼어난 재능을 갖고 있어서 뾰족하고 날카로운 창, 커다란 도끼와 튼튼한 방패, 활과 화살 등을 잘 만들었다. 사실 치우의 머리가 구리이고 이마는 쇠라는 것이 바로 치우가 구리와 쇠로 만들어진 투구를 쓰고 있었던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쇠를 다스려 무기를 만들 수 있었던 용감한 전쟁의 신, 그가 자신의 조상이었던 염제를 무참하게 패배시킨 황제와 싸워 잃어버린 땅을 찾고 싶어했던 것은 있을 수 있는 일 아니었을까.

(내 생각: 동이족의 터전이었던 산동/요서/요녕/만주 일대의 청동기 문명은 황하유역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지역의 스키타이 문명에서 전달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동이족의 터전이 장강동북부지지역에 퍼져 살았으며 그들의 청동기 문명은 북방민족에게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고 그 시기가 중원지역보다 더 빨랐을 가능성이 있다.)

 

 

제가 문상이라는 도시에 치우의 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년전이었습니다. 중국 내륙에 생산공장 이전을 위해서 이곳 저곳 많이 돌아다닐 무렵이었는데 문상이라는 도시를 가게 되었습니다.  산동의 지닝에 위치한 문상현은 조금 특이한 도시입니다.  사회주의 국가에 어울리지 않게 문상은 불교의 도시입니다.  그리고 유교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문상현은 공자가 처음 관직을 받아서 요즘 같으면 군수정도의 직책을 수행했던 곳이랍니다.  

공자가 자신의 유교적 이상을 실현시키고자 했던 첫 직장인 셈입니다.  물론 그렇게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닌 것 같고.. 여튼 문상은 덕택에 공자의 문묘가 있습니다. 

그리고 문상에는 도심지 한복판에 보상사라는 큰 절과 아직도 만들고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황금빛 불상 그리고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있다는 큰 탑이 있습니다. 


 


 

숭유억불을 정책으로 하던 송나라때 어떤 왕자하나가 불교에 심취를 해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구했는데 숨겨둘곳이 찾다가 이곳 문상에 땅을 파고 탑속에 사리를 숨긴채 파묻어 버렸답니다.  그 탑이 10여년전에 발견이 되고 사리도 같이 나와서 탑도 복원을 하고 그 주위로 큰 불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정말 중국은 파면 팔수록 재밋는 것 투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치우의 전쟁 준비와 묘족의 참전

 

치우는 예전의 패배를 설욕해 보자고 염제를 설득하려 하였다. 그러나 원래가 인자한 성품에 이제는 노쇠한 염제는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니 된다.”

왜 안 됩니까?”

나는 이제 그런 일에 관심이 없다. 그저 백성들과 편안히 살아가면 그뿐이야.”

그게 전부는 아니지 않습니까?”

나에겐 그게 전부이다. “

염제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 땅을 좀더 넓힌들, 중원으로 다시 진출한들, 뭐가 대수이랴. 여유롭게 농사지으며 백성들과 편안하게 살아가면 여기가 바로 낙원이지, 그깟 땅 조금 더 가진들 얼마나 더 행복하겠는가.

한 번만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다시 생각할 것도 없다. 이제 그만 얘기하자.”

염제는 단호했다. 결국 치우는 그냥 물러나와야 했다. 염제가 군사를 일으킬 생각이 없음은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치우는 포기할 수 없었다.

여기서 포기할 순 없다. 용맹스런 나의 형제들과 더불어 오랜 세월 준비해 왔는데, 황제가 제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붙어봐야 아는 것,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다니, 그럴 수는 없지.”

치우는 마음을 굳혔다. 용맹스러운 형제들이 모두 그를 도와 함께 군사를 일으키기로 했다. 무기도 충분히 만들어두었다. 그리고 그는 세상의 모든 도깨비들을 부릴 수 있는 술법을 알고 있었으며 비바람을 부를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세상의 모든 도깨비들이 내 말을 들을 것이다. 황제가 비를 부를 수 있다면 나 역시 비바람을 부릴 수 있다. 하지만 황제에게는 동물 선봉대가 있다지. 나도 뭔가 더 필요하다.’

곰곰이 생각하던 치우는 인간을 끌어들이기로 했다. 치우는 남방의 묘족을 찾아갔다. 묘족은 원래 황제의 후손이었으나 다른 종족과 달리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어서 불만이 가득한 터였다. 그래도 그들은 황제에게 대항해 전쟁을 일으킬 생각까지는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치우가 가담하지 않으면 큰 벌을 내리겠다고 그들을 협박했다.


(내생각: 고대 중원의 주된 세가지 민족은 화하족(華夏族), 동이족(東夷族), 묘만족(苗蠻族), 회하족의 위치는 황화의 상류, 동이족의 위치는 황하의 하류, 묘만족의 위치는 장강이남 회하족과 동이족의 오랜 전쟁 끝에 동이족은 와해되고 일부는 북방으로 일부는 남방으로 흩어진다 후기고조선과 부여 등의 나라가 북방으로 이동한 동이족의 나라들이고 남방으로 이동한 부족들이 다시 회하(淮河)에 모여서 회이(淮夷)족으로 불리며 계속적인 권력투쟁을 하나 점차적으로 더 밀려내려사 강남의 묘만족에 흡수된다.)



 

사실 치우가 묘족을 협박했다는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상서(尙書)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역시 황제의 시각에서 씌어진 역사 기록의 한계가 아닌가 싶다. 물론 이 묘족이 지금의 중국 남방 귀주성에 살고 있는 묘족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묘족 사람들은 그들이 고대에 중원 땅에 살고 있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묘족은 말이 소수민족이지 거의 천만 명에 가까운 인구를 가진, 중국의 제2의 소수민족이다. 그들의 단결력과 민족적 자부심은 놀라울 정도이며 소수민족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의 묘족이 만나고 있다. 조상을 모시는 축제일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귀주성의 축제 장소로 모여드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역사적으로 볼 때에도 이들의 단결력은 항상 중앙 정부의 견제를 받아왔다. 민족성이라는 것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니,이들이 바로 황제 시대의 묘족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기에 그 시절 묘족 사람들이 치우의 부추김 때문이 아니라 자진하여 치우의 군대에 합류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어쨌든 이제 치우는 묘족을 끌어들였다. 이번에는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도깨비들을 불러 모을 차례이다.

휘이! 세상의 도깨비들이여, 나의 말을 들었으면 모두 모여라.”

남방의 늪지대와 우거진 숲속에 사는 온갖 귀신과 도깨비들이 치우의 부름을 받고 삽시간에 모여들었다.

치우님, 무슨 일로 부르십니까?”

나를 좀 도와줘야겠다. 곧 황제를 치려고 한다. 막강한 황제이긴 하지만 그대들이 도와준다면 이길 수 있으리.”

흐흐, 재미있겠군요. 우리도 그 천제는 맘에 안듭니다. 신도인지 울루인지 하는 자들을 시켜 우리 동료들을 잡아다가 호랑이밥으로 던지곤 한다니까요.”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한판 붙는 일만 남았다. 귀기 흐르는 남방의 물가, 드디어 치우는 깃발을 휘날리며 진군에 나섰다.

형제들이여, 떠나자, 염제의 이름을 걸고 황제를 물리처러 가자!”

치우의 용감한 형제 여든한 명과 수많은 묘족들, 세상의 모든 귀신에다가 도깨비까지 모였으나 치우군은 말 그대로 남방 연합군이었다. 이들이 모두 모여 머나먼 북쪽 탁록(涿鹿)의 들판을 향해 진군을 시작했다. 그들의 함성소리는 하늘을 울리고 발자국 소리는 땅을 흔들었다.

내가 곧 염제이다! 이제 우리, 염제의 복수를 하러 가자. 진군하라!”

칼날이 번득였고 날카로운 창은 푸르스름한 빛을 내뿜었다. 위풍당당하게 치우의 군사들은 마침내 탁록의 들판에 도착했다.


(내생각 : 남방상제 염제는 농업과 의약의 신 신농(神農)씨를 일컫는다. 흥미로운 것은 주문왕과 무왕을 도와 은을 멸하고 주나라를 건국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태공망 강상이 염제의 후손이고 그가 건국하는 제나라 이전의 산동은 동이족의 땅이었다는 중국 역사 내용이다.)

 

탁록의 전쟁


 


 


 


 

뭣이? 치우란 놈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온갖 꽃이 찬란하게 피어 있는 곤륜산의 공중 정원을 유유히 거닐며 태평하게 지내고 있던 황제는 치우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더욱이 염제가 다시 한판 붙자고 할 수는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무명의 치우라니, 뜻밖이었다.

그자가 지금 탁록으로 오고 있다는 말이냐?”

, 그런데 그놈이 스스로 염제라고 칭한답니다.”

뭐라? 염제의 이름을 내세워?”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염제라는 호칭을 사용한다는 것은 자기를 몰아내고 중앙 천제가 되겠다는 뜻을 내보인 것으로, 곧 황제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고약한 놈!”

하지만 황제는 일단 무력 대응을 자제하였다. “()와 흑()’을 지닌 노회하고 치밀한 전략가였던 황제는 일단 자신이 넓은 포용력을 지닌 어진 천제라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야 했다. 한나라를 세운 고조 유방에 대해 후와 흑을 지닌 지도자라고 말하는 후대 학자들이 있다. 성질이 급하고 자기 속내를 쉽게 드러내 보이는 항우를 물리치고 절대로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노회함을 지닌 유방이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가 지닌 후와 흑 때문이라는 설명인데, 소위 인의를 지녔다고 하는 중국의 역대 지도자들이 대부분 그런 인물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중국 신화를 보면 황제야 말로 그러한 후와 흑을 지닌 지도자의 원조격인 듯하다. 황제는 말했다.

어쨌든 우선은 인의로써 다스려야 하느니.”

속이 탔겠지만 황제는 일단 인의로써 치우를 대해보려 했다. 그러나 그 소식을 들은 치우는 코웃음을 쳤다.

인의? 웬 말라 비틀어진 인의? 그런 건 당신이나 가지시지!”

덕으로 치우를 다스리려던 황제는, 일단 세상에 자신이 덕으로 해결해 보려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나자 명분이 확보되었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좋다. 네놈에게 쓴맛을 보여주마. 여봐라, 당장 군대를 동원하거라!”

황제는 먼저 자신의 동물 선봉대를 불렀다. 곰과 비휴(), 호랑이 등의 맹수로 이루어진 선봉대가 앞장섰다. 그리고 그 뒤를 사방의 귀신들과 인간 세상의 부족들이 따랐다. 황제는 중앙 천제였으니 사방의 귀신을 부리고 인간을 전쟁에 참여시키는 것은 당연히 가능했다.

남방의 요괴놈들을 모조리 잡아라.”

드디어 전쟁이 시작되었다. 치우의 군대는 과연 강인하고 용감했다. 황제의 선봉대도 용맹스러웠지만 치우 군대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치우에게는 쇠로 만든 뛰어난 무기들이 있었다.

저놈들이 갖고 있는 저게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아무리 내려쳐도 머리에 뭘 썼는지 무리가 들어가질 않습니다!”

황제시여. 안 되겠습니다. 놈들이 너무 강합니다. “

황제의 군대는 뒤로 밀렸다. 황제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일개 변방의 오합지졸들이 어찌 중원을 다스리는 자기의 군사보다 강하다는 것인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황제는 소리쳤다.

다시 진격하라. 돌격, 돌격!”

황제의 진격 명령에 앞으로 나아가긴 했지만 용기를 잃어버린 황제의 군사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게다가 눈앞이 갑자기 부옇게 되더니 하늘과 땅 사이에 안개가 가득 차 동서남북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치우에게는 안개를 피우고 비를 내리게 하는 재주가 있었던 것이다. 황제의 군대는 자욱한 안개 속에서 우왕좌왕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으아악!”

천지를 뒤덮은 부연 안개 속에서 머리에 뿔 달린 투구를 쓴 치우의 병사들이 손에 날카로운 무기를 들고서 홀연히 나타나 황제의 군사들을 베어 넘겼다.

모두 길을 찾아 빠져나가거라. 이 안개를 헤치고 나가란 말이다!”

못 찾겠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황제의 군사들이 아무리 날래고 용맹스럽다고 해도 천지를 가득 메우고 있는 부연 안개 속을 빠져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그리고 안개 속에서 출몰하여 황제의 군사를 벤 치우의 군사들은 금방 자취를 감추었다.

군사들이 좌충우돌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헤매고 있을 때, 황제는 풍후가 전차 위에 가만히 앉아 느긋하게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니, 이 난리통에 혼자서 잠이나 자고 앉아 있다니!’

화를 참으며 황제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풍후, 자넨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 이 상황에 잠이 오더냐?”

잠을 자다니요, 소신이 어찌 그럴 수가 있겠나이까.”

그럼 무얼 하고 있었단 말이냐?”

이 안개 속을 어찌 빠져나갈까 생각하고 있었사옵니다.”

그래, 좋은 방도라도 있단 말이냐?”

, 바로 북두칠성이옵니다.”

북두칠성?”

풍후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는 모두가 방향을 잃고 헤내는 그 난리 통에 북두칠성을 면밀히 관찰하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북두칠성의 국자 모양 손잡이가 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리키는 방향이 달라지는 것인가. 북두칠성 같은 물건을 하나 발명해 내기만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돌려놓더라도 항상 같은 방향을 가리킬 테니 방향을 알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생각 끝에 그는 마침내 어떤 물건을 만들어내었다.

이것이 무엇이냐?”

지남차라는 것이옵니다.”

어떻게 쓰는 것인가?”

수레의 맨 앞에 사람이 하나 있지요? 그 사람의 손가락을 유심히 봐주십시오.”

그러면서 풍후는 지남차라는 수레를 빙빙 돌렸다. 신기하게도 어느 방향으로 돌려놓아도 수레 끝에 달린 사람이 가리키는 손가락 방향이 일정했다.

정말 신기하구나!”

,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이 바로 남쪽이옵니다.”

오호! 자네가 내 목숨을 구했도다. 우리 모두의 목숨을 구했도다!”

황제는 감탄하였다. 마침내 천지를 가득 메운 아득한 안개 속에서 빠져나갈 방도가 생긴 것이다. 그제서야 기진맥진해진 황제의 군대는 지남차를 앞세우고 겹겹이 싸인 안개의 그물망 속에서 빠져나올수 있었다.

 

원래 1박2일 예정이라 오후시간에 도착을 하면 우선 치우천황묘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시간 남으면 문상이 예전 수나라 양제가 만들었다는 북경과 항주를 잇는 대운하의 흔적이 있다고 해서 거기를 들럿다. 다음날은 절구경하고 오후 차 타고 밤늦게 청도로 돌아올려고 했는데 원래 6시간 걸린다는 길을 거의 10시간만에 도착을 하고 나니 스케줄이 완전히 꼬여 버렸습니다. 

더군다나 버스정류장에 내일 돌아가는 차를 물어보니까 문상에서 청도가는 차는 아침에 밖에 없다는 군요..  그럼 2박 3일을 해야하나보다 하고 5월 1일날 돌아가는 차는 물어보니까 자리가 없다네요... 우짜지....

그럼 지닝까지 다시 가서 기차를 타고 가야하나.... 

여튼 여기 다시온 목표는 치우천황님 묘에 가서 제사지내는 거 였으니까...일단 거기부터 무조건... 



 

응룡과 발

 

이 사건 이후로도 전쟁은 치열하게 계속되었는데 황제의 군대는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치우의 군대에 가담하고 있는 세상의 온갖 도깨비와 귀신에게는 이상한 소리를 내어 사람을 홀리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멍청해져서 넋을 잃고 소리 나는 쪽으로 걸아가 도깨비들의 밥이 되어버리곤 했다 그 도깨비들은 바로 이매, 망량, 신괴라 불리는 세 무리로 나뉘었다. 이매는 동물처럼 생겼지만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었고 다리가 네개 달렸다. 망량은 어린아이처럼 생겼으며 온몸이 검붉었다. 귀가 길고 눈은 새빨갰으며 감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사람들 말소리를 특히 잘 흉내 냈다.신괴는 사람의 얼굴에 동물의 몸을 하고 있었는데 팔다리가 한 개씩 밖에 없었다. 신괴는 꼭 하품하는 것 같은 소리를 내었다. 이런 것들이 온갖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병사를 홀리자 황제의 군대는 점점 희생이 늘어만 갔던 것이다

대책을 궁리하던 황제는 마침내 도깨비들이 무서워하는 것이 다를 아닌 용의 소리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용이라고? 용의 소리를 어떻게 낼 수 있다는 말인가?”

걱정 마시옵소서. 용의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가 있습니다. 소나 양의 뿔로 나팔을 만들면 되옵니다.”

그래, 어서 만들어보도록 해라.”

병사들이 급히 뿔로 나팔을 만들어 불기 시작했다. 낮고 웅웅거리는 소기가 전장에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부우우웅.”

정말 이 나팔 소리는 금방 효과를 나타냈다. 도깨비와 요괴들은 그 소리를 듣자 모두가 힘을 잃고 마치 술에 취한 듯 흐느적거리며 몽롱해져서 사람을 홀리는 짓을 못하게 되었다.

성공이다. 저 요괴 놈들이 맥을 못 추는군. 진격하라, 이 틈을 타서 저 요괴 놈들을 없애라!”

요괴들이 정신을 놓은 틈을 타서 황제의 군대는 치우의 진영으로 진격해 들어갔고, 처음으로 작은 승리를 얻어낼 수 있었다.

요괴 놈들이 용의 소리를 무서워한다? 그래, 그렇지!”

황제는 이번에는 응룡(應龍)을 불러올 생각을 했다. 응룡은 날개가 달린 신룡으로서 흉리토구산 남쪽에 살고 있었는데 물을 모으고 비를 내리게 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치우 놈이 짙은 안개를 피워 꼼짝 못하게 하고 있으니 응룡을 불러다가 큰 비가 내리게 해보자. 비가 엄청나게 내리면 안개쯤이야 금방 사라지겠지. 게다가 요괴 놈들이 용을 무서워하니 이거야 말로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황제의 명에 따라 응룡은 출정 준비를 했다.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날며 구름을 몰아왔다. 비가 내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엄청난 먹장구름이 몰려오더니 치우의 진중이 아니라 황제의 진중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내리고 광풍이 휘몰아치는 것이었다.

응룡, 어찌 된 일나야? 치우의 진중에 비가 내리게 하랬더니, 왜 우리에게 비를 쏟아 붓는 것냐?”

응룡은 당황했다.

아니옵니다. 제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게 도대체….?”

응룡을 불러다가 큰 비를 내리게 하려는 황제의 계획을 치우가 이미 알아챘던 것이다. 그리고 응룡이 비를 내리기 전에 먼저 자신의 부하인 풍백(風伯)과 우사(雨師)를 보내 황제의 진중에 비바람이 몰아치게 한 것이었다.

으하하, 황제여, 항복하라. 네가 하려는 일을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다!”

치우는 기고만장하여 호탕하게 웃었다. 반면,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엄청난 비바람에 군사들이 우왕좌왕 오합지졸이 되어가는 것을 내려다보며 황제는 가만히 어금니를 악물었다.

 

(삼국유사 고조선편: 평소 인간세상에 관심이 많았던 환인의 서자 환웅은 곧잘 천하를 내려다보았다아들의 뜻을 안 환인은 세 봉우리가 솟은 태백산을 내려다보고,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하다 여기고는 신의 위력을 지닌 천부인 3개를 환웅에게 주면서 그곳을 다스리도록 했다.

그리하여 환웅은 3,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에 내려와 그곳을 신시라 이름 지었다. 이분이 바로 환웅천왕이다. 환웅은 풍백, 우사, 운사에게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주관하게 하고, 인간의 모든 일 360여가지를 주관하여 세상을 다스리고 가르쳐 이끌었다.)


중국의 신화와 우리나라의 신화는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하도 이이야기 저이야기가 많아서 어디까지가 진짜신화이고 어디까지가 만들어낸 이야기인지 분간이 안갈때가 많습니다.  신화라는 것은 구전되는 수많이 이야기들이 세월 거치면서 상징적인 체계로 형성이 되는데 우리의 신화와 중국의 신화는 그 지역적/정치적 특성상 서로에게 유리하게 재해석되고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이야기도 꽤 많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저놈이 비바람을 부르는 솜씨가 우리보다 한 수 위로군. 비바람으로는 저놈을 어찌해 볼 도리가 없겠다. 좋아. 물에는 불이다!()을 불러라

 

발은 황제의 딸이었다. 그녀는 계곤산 공공지대에 살았는데 늘 푸른 옷을 입고 다녔다. 그렇게 못생긴 얼굴은 아니었지만 대머리였고 몸속에 거대한 불덩어리가 들어 있어 항상 이글이글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아버지, 부르셨어요?”

가슴속에 불덩어리를 품고 있는 발이 나타나자 비바람이 몰아치던 전쟁터는 일순간 햇볕이 쨍쨍한 곳으로 변했다. 몰아치던 폭풍우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지고 무더운 날씨를 보였다. 이런 발의 등장에 놀라 치우 군대가 잠시 얼이 빠져 있는 사이, 황제는 다시 공격을 개시하여 치우 형제 몇 명을 없앨 수 있었다.

황제의 딸 발은 아버지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러나 몸 속의 기를 너무 소모했던 탓일까, 천제의 딸인데도 그녀는 다시 하늘로 돌아갈 수 없었다. 자기를 불러다가 불을 내뿜어 달라고 했던 아버지 황제도 쓸모가 다하자 그녀를 다시 돌아보지 않은 듯하다.

아버지, 저는 어찌합니까?’

발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버지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그는 너무나 바빠 보였다. 혼자서 머뭇거리던 발은 하는 수 없이 스스로 갈 곳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어디로 가야 하지?’

그렇게 그녀가 망설이면서 정처 없이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사이, 지상에는 난리가 났다. 그녀가 가는 것은 어디나 쨍쨍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 때문에 가뭄이 들어 농작물이 모두 타 죽고 마실 물도 사라졌다. 여름에 가뭄이 심하게 들면 한발이 들었다라는 표현을 우리나라에도 쓰는데, ‘가뭄이라는 뜻의 한자어인 한발(旱魃)’은 바로 황제의 딸 이름에서 온 것이다.

 

다리가 하나 달린 유파산의 기, 북소리의 힘

작은 승리를 얻기는 했지만 황제 군대의 사기는 점점 떨어져 가고 있었고 치우 군대는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황제는 군사들의 사기를 높여주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는 생각을 했다.

전쟁은 기 싸움이지. 일단 군의 사기를 높여야 할 텐데, 어떻게 해야 좋을 것인가?’

곰곰이 궁리하던 황제에게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그렇지 북소리만큼 사람을 흥분시키는 건 없다. 커다란 북을 만들어 그걸 두드리면 군사들이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

마침 동해의 유파산에 기()라는 동물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황제는 기를 잡아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기는 소처럼 생겼으나 뿔이 없고 청회색 몸에 발이 한 개 달린 동물이었다. 육지에 살면서 수시로 바닷속에 드나들었는데, 기가 바닷속으로 들어갈 때면 엄청난 폭풍우가 일어났다. 또 눈에서는 햇빛처럼 찬란한 빛이 나왔고 입을 벌려 소리를 지르면 그 소리가 천둥 소리 같았다고 한다.황제는 바로 그 소리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마침내 기가 잡혀 왔고 황제가 명령했다.

껍질을 벗겨 북을 만들어라!”

가엾은 기는 영문도 모른 채 죽게 되었고, 말린 기의 껍질은 거대한 북이 되었다.

됐다. 멋진 북이야! 그런데 북채가 없지 않나?”

황제는 북채가 필요했다. 기의 가죽으로 만든 북에서 멋진 소리가 나오게 하려면 그것에 견줄 수 있을 만한 훌륭한 북채가 있어야 했다.

북채라, 뇌수(雷獸)의 뼈만큼 좋은 게 없겠지? 가서 뇌수를 잡아오너라!”

뇌수가 어떻게 생긴 동물인지는 자세히 알 수가 없지만, 우레신의 연못가에 살면서 엄청나게 큰 소리를 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황제는 바로 그 뇌수가 탐났다.

잡아왔나이다!”

결국 뇌수 역시 아무런 죄 없이 잡혀와 황제의 승리를 위한 재물이 되었다. 황제는 뇌수를 죽여 그 몸에서 가장 큰 뼈를 꺼내 북채로 삼게 했다. 천둥 소리를 내는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북에, 우레 소리를 내는 동물의 뼈를 북채로 썼으니, 그 소리가 얼마나 컸겠는가.

!!!”

소리가 울리는 순간, 사람들은 모두 귀를 막아야만 했다. 일설에 의하면 북소리가 오백리 밖에서도 들렸다고 한다. 그 북을 전차에 싣고 일곱 번을 연달아 두드려대니 온 들판이 우릉우릉 울렸다.

정말 대단한 소리야!”

북소리를 유심히 들어본 사람이면 알 것이다. 그 타악기의 소리가 사람을 얼마나 흥분시키는지, 얼마나 피를 끊게 하는지, 황제 군사들의 사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반대로 치우군대는 귀를 먹먹하게 하는 북소리에 정신이 나가 멍하게 있다가 습격당해 혼비백산 도망치기 바빴다. 치우 군대가 꼼짝도 못하고 있는 틈을 타서 황제의 군대는 공격을 감행, 엄청난 전과를 올렸다.

 

위기에 처한 치우는 같은 염제의 후손인 거인족 과보족(夸父族)에게 도움을 청했다.


(산해경: 과보가 자기 힘을 헤아리지 못하고 해을 따라가고자 했다. 우곡에 이르러 목이 말라 강물을 마셨으나 목마름이 가시지 않았고 대택의 물을 마시려고 달려가다가 이곳에서 죽었다.

과보는 태양과 달리기 경주를 해서 이겼다는 거인입니다 태양보다 빨리 달리는 것은 좋은 데 너무 목이 말라서 그만 죽고 말았다는 전설입니다.) 


묵기로한 호텔에서 치우의 묘까지는 택시를 타고 40여분 달려서 도착을 했습니다.  오래되어 보이지만 한적한 남명전이라는 마을을 지나서 크기는 했지만 생각보다는 그렇게 거대하지 않은 묘앞에 택시기사가 내려주었습니다. 

사람좋게 생긴 택시기사는 30대 중반쯤 되어 보였는데.. 여기는 찾는 사람이 없어서 놀러다니기 좋아하는 자기나 되니까 찾아올 수 있는 곳이라고.. 하면서... 

묘를 보니까 서글펴 집니다... 너무나 초라한묘... 더구나 화가 나는 것은 누군가가 묘앞에 있는 비석을 치어버렸네요. 

인터넷 사진에는 분명히 치우묘라는 큰 비석이 있었는데 비석 대신에 중국의 묘앞에 흔히 보이는 사자상 두마리만 있네요...  아마 저같는 한국사람이 찾아와서 여기가 예전에 우리 조상이 살던 땅이고 이분이 우리 조상입네 뭐네 하니까... 치워버린 모양입니다.  씁쓸하네요... 



 





바로 이러한 과보족이 전쟁에 참여했다. 그 구체적인 정황은 물론 알 수가 없었다. 과보족의 참전으로 치우가 힘을 얻어 황제의 군대는 다시 밀리기 시작했다. 전략가 황제는 또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내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황제 앞에, 어느 날 갑자기 어떤 부인이 나타났다. 부인은 사람의 얼굴에 새의 몸을 하고 있었다.

저는 현녀(玄女)라고 합니다. 득도하여 하늘나라의 선인이 되었지요. 황제께서 고전하고 계시는 모습이 보기 안타까워 병법을 알려드리고자 왔습니다. “

그러면서 현녀는 황제에게 병법을 알려주었다. 때마침 곤오산에서 불덩이처럼 붉은 구리가 나왔다는 연락이 왔다.

하늘의 뜻이로다. 그것으로 검을 만들어라!”

곤오산의 붉은 구리로 푸른 검을 만들어졌다. 칼집에서 칼을 뽑으니 푸르스름한 찬 기운이 주변에 맴돌았다. 칼은 수정처럼 투명했다.

멋진 칼이로다. 천하의 명검이로고!”

황제는 흡족해졌다. 그 칼로 옥을 잘라보았더니 마치 진흙덩이를 베는 듯 쉽게 잘려졌다.

이 두 사건으로 사기가 오른 황제의 군대는 치우의 군영을 향해 돌격했다. 이제 황제는 무조건 진격하는 것이 아니라 현녀가 알려준 방법에 따라 움직였다. 치우의 군대가 용감했다고는 하지만 전쟁은 용맹스러움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다. 황제가 전략에 따라 이리저리 군대를 움직이니 황제의 속뜻을 파악하지 못한 치우의 군사들은 황제의 포위망에 갇히고 말았다. 겹겹이 둘러싼 황제의 포위망을 뚫기란 불가능했다. 더구나 하늘에서는 응룡이 날아디니며 치우와 과보족을 공격했다. 포위망을 좁혀가던 황제의 군사들은 드디어 치우를 생포했다.

치우, 이제 그만 포기해라.”

다 끝났다. 죽여라.”

그래 네 소원대로 해주마.”

황제에게 치우는 악이었다. 악은 제거해서 세상에서 사라지게 해야 했다. 황제는 탁록지방에서 그를 죽였다. 물론 손과 발을 수갑과 족쇄를 채워 꼼짝도 못하게 한 뒤에 그를 살해했다. 그리고 완전히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뒤에 말했다.

저 수갑과 족쇄를 내다버려라.”

치우의 붉은 피가 묻은 수갑과 족쇄는 거친 들판에 버려졌다. 그런데 그것이 후에 단풍나무 숲으로 변했다. 피처럼 붉은 단풍나무의 잎은 바로 치우의 피, 사라지지 않은 치우의 원한이라고 한다.

 

다른 기록에 의하면 치우는 탁록에서부터 후퇴를 거듭해 기주 중부까지 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에서 황제에게 잡혀 목이 잘렸는데, 머리와 몸이 완전히 분리되었기 때문에 치우가 목이 잘린 그곳을 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곳이 지금의 산서성 해현(解縣)인데 그 근처에는 해지(解池)라는 소금 연못이 있다. 그 연못은 둘레가 백리가 넘는데, 연못의 물이 붉은빛이다. 사람들은 치우가 죽을 때 흘린 피가 스며 들어가 그런 물빛이 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잘려나간 머리와 몸은 각각 다른 곳에 매장되었다. 머리와 몸을 같은 곳에 묻었다가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아예 멀리 떨어진 곳에 따로 묻어라고 황제가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그런데 치우의 머리가 묻혀 있는 곳인 수장현(壽張縣)에서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해마다 10월이 되면 사람들이 치우의 무덤에 제사를 지냈는데 그때가 되면 붉은 안개 같은 것이 하늘에 걸려있는 듯했으니, 사람들은 치우의 원한이 붉은 깃발 모양의 기운이 되어 하늘로 솟아올랐다고 여겨 그것을 치우의 깃발(蚩尤旗)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음식을 준비하지 못한 관계로 제사를 제대로 지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절을 했습니다.  임금님이었으니까 아홉번 절을 했습니다. 

택시기사가 이상한 듯 쳐다보았습니다만,  

도착을 했을 때는 여기에 묻혀있는 사람이 치우가 맞는지 어떤지 의문이 들었습니다만, 

절을 하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몇천년전에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서 살다 간 한사람의 영웅에게 자그마한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 그리고 내가 이땅에 얼마나 더 머물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나는 수많은 시간을 뛰어넘어서 내 조상들이 그들의 목숨을 바쳐서 지키고자 했던 그들 삶의 터전에 지금 내가 서있지도 모른다는.....   


 

 

蚩尤位于汶上县城西南十九公里的南旺镇座北向南树木参天


 



     蚩尤是中华民族历史上的杰出人物与黄帝炎帝同时代的部落首领和民族领袖龙鱼河图黄帝之前有蚩尤兄弟七十二人铜头铁额食沙石制五兵之器变化云雾。《圣记自古以后蚩尤天王辟土地铜铁炼兵兴产。《太始蚩氏乃东据淮岱之地以轩辕东进之路及至其没渐至退缨矣今据汉地理志》,其墓在东平郡寿张县阚乡城现今山东汶上县南旺镇),冢高五丈汉之际居民由常以十月祭之必有赤气出如绛民名之蚩尤旗蚩尤战败于轩辕后逃淮岱冀兖之地史料所载的城于涿鹿宅于淮岱迁徙往来号令天下古指泰山古指兖州即今兖州市),说明蚩尤被炎黄打败后的势力范围和生存空间已缩小到泰山兖州汶上东平巨野一。《二十八卷三日兵祖祠蚩尤蚩尤在东平陆阚乡齐之西境地东平陆即今山东汶上县阚乡今汶上南旺)。关专家根据资料记载对蚩尤冢进行了全面论证和考古勘探证实汶上乃是历史上蚩尤部落的主要栖息地东夷文化的主要发祥地之一国帝王辞典记载当时黄河中上游有黄帝部落炎帝部落下游有东夷族九黎族们之间常为了争夺财务和生存空间而发生战争九黎族首领蚩尤英勇善战战败了炎帝族炎帝族求救于黄帝黄二族联合起来与蚩尤大战于涿鹿之野有史料战于黄河下游泗济蜀流充斥的平陆之野即泗河现今山东汶上县)。蚩尤被被分埋葬于汶上巨野等地蚩尤四冢之说),其首级葬于阚里现即汶上县南旺镇)。
     
蚩尤冢位于汶上县南旺镇黄览曰蚩尤冢在东郡寿张县阚城中冢高七尺常以十月祀有赤气出民名为蚩尤旗国志曰东平陆有阙亭东平陆在汶上阚城亭鲁诸公墓焉即此地矣。《国帝王大辞典》、《辞源》、《经注》、《兖州府志卷二十三卷》、《汶上县志》、《阚城诸公墓之图对此均有记载
    
蚩尤冢现存两幢石碑石碑高2.31.530厘米屹立于蚩尤冢前石碑的下面刻有文字蚩尤为清代人所刻蚩尤祠碑刻现存放在县博物馆内
千百年来凭吊祖先的海内外游人络绎不绝
巨野何以有蚩尤墓

      
黄帝炎帝蚩尤乃是上古三大部落集团之首领蚩尤东方九黎东夷团的最高首领蚩尤集团的活动区域约在山东的中西部及河北的东南部其起家的中心地约在山东的汶上寿张一带长期以来在儒家所建构的华夏正统传承世系架构下在庸俗历史观的潜意识的驱使下积淀而成的蚩尤形象是被边缘化妖魔化了的实上蚩尤在中华民族的发展历史上举足轻重可以毫不夸张地说蚩尤是我国古代冶金业的第一人是我国古代兵器制造业的第一人是我国古代天文气象事业的第一人
      
大家都知道在我国古代部落集团利益扩张的过程中蚩尤集团曾经打败了处于黄河中下游以南的炎帝集团并取代了炎帝的首领称号炎帝集团遂与处于黄河中游的黄帝集团联合与向西北推进的蚩尤集团在涿鹿之野彻底打败了蚩尤集团战以后黄帝炎帝两个部落集团已初步联合成为炎黄华夏部族联盟战败了的蚩尤集团遗族主体辗转迁徙到西南方形成了三苗部族集也有少部分族众流落在中原融入了炎黄集团之中史籍记载迁其民之善者于邹屠之地恶者于有北之乡其先以地命族后分邹氏屠氏包括黎氏)。也就是来的邹姓屠姓黎姓等基本上是属于流落中原的蚩尤遗族的后裔
      
记载蚩尤东平郡寿张阚乡城中高七丈民常十月祀之有赤气出如匹绛帛民名蚩尤旗蚩尤肩髀在山阳郡巨野重聚大小与阚冢等传言黄帝与蚩尤战于涿鹿之野黄帝杀之身体异处别葬之寿张阚乡在今汶上县南旺镇西约1.5公里阳郡巨野即今巨野境重聚居考证在今巨野县城东北2.5公里的堌堆庙也就是蚩尤的肩髀
      
头传说而经传未见记载的蚩尤冢还有两处一是河北涿鹿的蚩尤位于涿鹿县保岱村北占地2700平方米6米多一是河南台前蚩尤在台前县后三里村东南约300清末民初时冢仍占地约2000余平方米1.51933黄河决口该冢被淤没来村民在原址堆起一座土丘1956年被耕为平地
      
蚩尤被黄帝擒杀后遗族之一部分留于中冀之地即蚩尤战败之地),其地为今河北山西一山西运城市东郭镇有一村名蚩尤村来已讹为吃牛村。《安邑县志.杂记》(安邑今山西夏记载蚩尤村向奉蚩尤阴历四月一日习俗人家门首插皂叶蚩尤村则插槐叶据蚩尤村村民二十世纪七十年代初曾有苗族兄弟数人专程访问蚩尤村寻根拜祖。《太平寰宇记载蚩尤城在安邑县南一十八里宋朝沈括梦溪笔谈记载解州盐池曰解池传为黄帝杀蚩尤处方百二十里久雨四方之水悉注其中尝溢大旱未尝涸卤色正赤在版泉之下俚俗谓之蚩尤血来这个解池就是蚩尤被杀并被肢解之处这个解池的似乎可以理解为肢解的这个解州就是现在山西运城西南解州镇南朝任昉异记.卷上记载太原村落祀蚩尤神不用牛”“今冀州有乐名蚩尤戏其民两两三三头戴牛角而相抵上述运城太原冀州等地为古中冀之地正是蚩尤战败被擒杀之处古代民俗民不祀非族么上述地方肯定有众多蚩尤遗族存在
      
蚩尤遗族的主体部分自中冀之地辗转迁徙至西南方其路线可以大致推测为中冀------涿鹿------台前-----寿张阚乡------巨野重聚------洞庭湖阳湖之间------湖南武陵------再西南山地么推测他们的迁徙行程可以这么描述
      
蚩尤被擒杀后遗族一部分散落于中冀当地大部分遗族未离散们收回蚩尤被肢解的尸体在炎黄大军的逼迫下向老根据地------东夷之地撤退退到涿鹿这是蚩尤集团战胜炎帝并取代其称号的地方遗族即将蚩尤部分尸骨葬于此地以做纪念在炎黄大军逼迫下继续东撤至河南台前这是蚩尤带领部族集团逐鹿中原的第一站黄河的地方将蚩尤的部分尸骨葬于此地以做纪念再退至山东汶上这是蚩尤部族集团的故地少昊之地打算重整旗鼓。《龙鱼河图天下复扰乱当也包括蚩尤遗族的再次崛起结果是再次被炎黄大军击败被迫放弃故地向南方败退由于汶上是蚩尤部族的发祥地故又葬部分蚩尤尸骨于此地南行过巨野已是蚩尤故地的南部边缘因而又葬部分蚩尤尸骨于巨野重聚以做纪念在炎黄大军的继续压迫下蚩尤遗族继续南行迁至荆州左洞庭右彭蠡暂时安顿下来但是不断遭到华夏部族集团的继任者尧禹的扩张威胁尧时与三苗战于丹水也就是现在的湖北丹江如舜舜征三苗死于苍梧苍梧即今湘南粤北一蚩尤遗族在多次战争中被屡屡击败只好再次举族向西南迁徙到湖南武陵并以武陵为起点向西南方向迁徙扩散
      
蚩尤的躯体部分已分别在涿鹿台前汶上巨野安葬完头颅似应当是安葬在湖南武陵了唐代武陵地方志朗州图经》(武陵古称朗州记载古代武陵曾发现一座神秘的大型古墓层冢在武陵县北一十五里又二百步周廻五十步高三丈亡其姓名古老传云昔有开者见铜人数十枚张目视闻冢中击鼓大叫竟不敢后看冢土还合如初
      
湖南武陵一过去有请儺神演儺戏的习俗其所用的儺神面具研究认为与蚩尤头颅安葬的纪念活动有密切关


경비계산 : 

고속버스 차비 왕복 : 158원 x 2

호텔 숙박료 : 260원 (인터넷에서 찾지를 못해서 누구를 시켰는데 킹사이즈 싱글을 해 놓았네요.. 그냥 표준방은 150원이랍니다.) 

택시비 : 130원 

식대 : 26원 

군것질 : 50원  

총 802원 


 


ㅎㅎ 돌아올때는 여차여차 해서... 혼자다니는 여행은 스케줄 맞출 필요가 없어서 좋아요... 

다음에는 북경에 가볼 생각입니다. 1박 2일 북경 박물관 투어.

입력 2012-05-02 오후 4: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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