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2020-07-02 Thursday
홈 현재 경제노트 가족은 395,966명 입니다.
당신은 95,652,495번째 방문객 입니다.
경제노트 서가 가족이 쓰는 노트 책밑줄긋기 독서모임
로그인 |
회원가입없이 경제노트를 이메일로 받고 싶으신 분은 이름과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개인정보 수집및 이용 안내에 동의
(확인하기)
뉴스레터 수정/해지
추천인
이름
메일
추천받는 분
이름
메일
인사말
개인정보 수집및 이용 안내에 동의
(확인하기)
한번에여러명추천하기
세계 일본 링크메모
히데요시군의 전략물자 철포탄환의 납, 동남아시아로부터도 조달 - [번역]
입력 2009-12-23 오후 3:51:28
월간경제노트구독
  写真:田中城跡で発見された鉄砲玉。4割が東南アジア産と判明した=熊本県和水町教育委員会提供
<타나카성터에서 발견된 철포 탄환. 40%가 동남 아시아산이라고 판명되었다>
 
 
전국의 난세를 끝내고 일본에 통일을 가져다 준 원동력이라는 철포(조총).
 
이 전쟁에서 없어서는 안될 탄환의 다수가 동남 아시아산의 납을 원료로 했다고 보여지는 사실을
벳부(別府)대학교의 히라오(平尾)교수(문화재과학과)가 연구로 밝혀냈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가 패자(覇者)가 된 배경이 납이라고 하는 전쟁 물자로부터라고 생각하는 새로운 역사상이 떠올랐다.
 
「드디어 밝혀냈다.」 납의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히라오 교수가 20년 동안의 질문에 답을 찾아낸 것은  캄보디아의 메콩강 유역의 작은 마을이었다.
천수백년전 묘지의 유적으로부터 출토된 청동 팔찌 10점 전부와 10개의 유리구슬 중 절반이 찾고있던 납을 포함하고 있었던 것이다.    
 
◇ 동위체 비율로부터
 
찾고 있던 것은 「N영역」이라고 이름 붙인 산지의 납.
납에는 4개의 동위체가 있고, 그 비율에 의해 일본, 한국, 화북, 화남등으로 산지를 추정 가능하다.
전국시대의 철포탄환을 분석하던 중 히라오 교수는 동아시아에서는 산지를 찾을 수 없는 동위체 비율을 한 N영역의 납의 존재를 발견했다.
 
유럽 또는 동남아시아산인가라고 생각하여 연구의 범위를 확대. 07년에 도착한 곳이 캄보디아였다. 08년에는 타이의 출토품도 분석하여 자기의 설을 보강.
메콩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동남 아시아산으로 절대 틀리지 않는다고 히라오씨는 말한다.
 
N영역 산출 납의 양은 시대에 의해 변화한다. 구마모토현의 타나카성터에서는 전국 말기인 1587년에 정책에 저항하여 발생한 반란세력을 히데요시군이 공격하여 전멸시킨 옛 전쟁터.
거기서 발견된, 히데요시군이 발포했다고 생각되는 탄환 56개를 분석하자 일본산 25개, 한국, 중국산 10개에 대해 N영역이 21개. 4할에 가깝다.
 
나라 도다이지(東大寺)의 남대문에서 발견된 3발은 2발이 N영역. 대불전이 불탄 1567년의 미요시-마츠나가의 전투 흔적이라고 추정되는 탄환이다.
 
에도시대에 들어간 1,637년에 시마바라(島原)의 난의 무대가 된 하라(原)성터(나가사키현)에서는 약 100개 가운데 N영역은 15% 정도였다. 그러나 이윽고 N영역의 탄환은 모습을 감춘다.
화폐 「간에이츠호우(寛永通宝)」는 쇄국이 완성된 시기에 주조가 시작되었지만 N영역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벳부대의 이타누마(飯沼)교수(일본사)는 문헌에서 납을 찾아보았다. 전투에서 곤경에 처한 크리스챤 다이묘(大名)를 돕기 위해 예수회가 납을 전달해 주었다는 1580년의 기록이 발견되었다.
네덜란드 사신이 1609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지참한 토산품에는 순금잔 2개에 명주실 350근, 상아 두 개와 나란히 납 3천근이 포함되어 있다.
 
납은 은의 정련에도 빠질 수 없었다. 납을 사용한 새로운 수법이 1530년대에 일본에 전해지자 이시미(石見)광산을 시작으로 은 생산이 급증대.
포르투갈인이 철포를 전달해 준 것은 1543년. 은의 나라 일본의 평판이 퍼져가던 때였다.
 
납을 통해 새롭게 보여지게 된 역사를 두 교수는 연명으로 논문에 이렇게 정리했다.
 
「납이 전국시대를 움직이게 했다. 경제력을 보여주는 정련, 군사력을 의미하는 철포탄환,
급격한 수요의 증가로 자급할 수 없었던 납을 해외로부터 조달하는 루트를 손에 쥔 자가 전국의 패자가 되었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가 무역의 중심이었던 사카이()를 중시하고, 포르투갈인등의 상인은 동남아시아에서 납을 조달하여 일본으로 운반, 은을받았다.
 
◇ 밀무역 루트
 
이번 성과에 대해서 동경대의 쿠로다 교수는 다음과 같이 본다.
「동남아시아에서는 16세기에 납의 통화가 사용되고 있었고, 납의 생산이 풍부했다.
베트남 남부에서 수집하여 중국을 경유한 밀무역 루트로 운반했을 것이다. 화약의 원료인 초석도 같은 루트로 전달되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전국시대를 무대로 한 소설이 많은 작가 아베씨는 「납과 초석을 확보하지 않으면 철포를 쓰지 못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어떤 전국 다이묘도 수입에 최선을 다했을 것이지만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는 기록이 없으므로 알 수 없었다.
전국시대 최고의 수수께끼로 생각해 왔지만 처음으로 길이 보였다. 흥분되는 획기적인 연구다」라고 말했다.
 
(와타나베 기자)  
출처 : 아사히신문
입력 2009-12-23 오후 3:51:28
트위터에 담기 스크랩하기 내모임에담기 이메일추천하기 인쇄하기
덧글(4) 스크랩(0) 이 노트 글을...
예병일의경제노트 노트지기 덧글
예병일

0

0
최영재 가족님,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12-24 오후 7:26:25]

1
답글열기
이덧글에답글달기
진영대

0

0
예전 '대망'을 읽으면서 다케다 싱겐이 죽고 아들이 이끈 전국 최강의 부대가
노부나가의 총부대에게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던 장면이 기억이 나네요
노부나가가 앞서나간 데에는 시대적 환경적 배경이 있었던 거로군요
흥미로운 정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12-24 오후 4:15:38]

1
답글열기
이덧글에답글달기
덧글 달기
덧글달기
이름     비밀번호
엮인글(트랙백) 쓰기 주소 : http://note.econote.co.kr/tb/crom0442/57667    
덧글(4) 스크랩(0) 이 노트 글을...
"차,반도체"일본의 역습이 거세다
일본 도쿄여행 추천음식 Best 10
노트 목록으로 이동
필자 예병일 소개 경제노트 소개 1:1문의하기 개인정보 취급방침
예병일의 경제노트    대표자: 예병일    개인정보 관리책임자: 예병일    전화: 02-566-7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