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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를 읽고~
입력 2010-01-06 오후 8:02:15
월간경제노트구독

위대한 고전과의 치열한 대화, 깊이 있는 사색으로의 초대 <청춘의 독서>

 

나는 정치인 유시민을 모른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전에 담배 한 대 올렸던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글쟁이 유시민은 더더욱 몰랐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은 적이 있었지만 그것이 유시민의 작품인지는 알지 못했다. 가끔 모 토론 프로그램에서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빠른 말투로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피력하며 약간은 수줍은 미소를 띠었던 그를 보았지만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다. 북스캔 북클럽에 참여하면서 처음 접하게 된 <청춘의 독서>, 이 책을 읽고 무척 충격을 받았다는 것만 우선 말해두자.

 

난 책을 읽을 때 남들과 좀 다른 습관이 있는데 그건 우선 저자 소개를 보고 그 다음 목차를 본 후 머리말과 저자나 역자 후기를 먼저 읽는 것이다. 왜 이런 습관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모르겠지만 나에게 맞는 좋은 책을 선정하는 비법이다.

 

유시민은 6권 이상의 사회과학서적을 쓴 글쟁이이자 칼럼니스트, 방송토론 진행자이다. 대중에게는 16·17대 국회의원이자 제44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알려진 정치인이다. 그런 그가 길을 잃었다. 정치적 스승을 잃고 정치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고 있을 때 그 옛날 사마천이 그랬듯이 과거를 반추하며 낡은 지도를 다시 꺼내들었다. 오래된 지도 안에는 예전 그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들이 즐비했고 그것은 분명 그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준 듯 했다.

이 책에는 알게 모르게 역사를 뒤흔든 14명의 선지자들이 나온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리영희, 카를 마르크스, 토머스 맬서스, 알렉산드르 푸시킨, 맹자, 최인훈, 사마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찰스 다윈, 소스타인 베블런, 헨리 조지, 하인리히 뵐, E. H. 카까지.

 

그는 방송토론 진행자와 자칭 지식 소매상답게 파격적인 화두 하나씩을 던져 놓고 위대한 지성의 고전을 세심하게 살펴봄으로써 자신만의 해답에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이 책은 정치인이자 한 인간인 유시민이 위대한 고전과 나눈 치열한 사색과 대화의 기록이다.

 

난 이 책을 통해 독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독서를 이렇게 정의한다.

‘독서는 책과 대화하는 것이다. 책은 읽는 사람의 소망과 수준에 맞게 말을 걸어주고 그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들은 왜 책을 읽는가? 작가는 왜 책을 쓰는가? 그는 이 책의 서두에 삶은 아름다운 축복이라는 것을 딸에게 알려주기 위해 이 글을 썼다고 했지만, 후기에 보면 자신이 살아온 지난 인생이 잘못되었다고 믿을 수 없었던 저자가 과거의 자신과 대화를 나누기 위한 창구로 선택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선택과 삶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고 현재의 삶을 선택하는 데 크게 일조한 고전들을 다시 만나서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좋은 책을 그 자체가 기적이다. <사기>를 읽을 때 나는 2000년을 단숨에 건너뛰어 사마천의 숨결을 느낀다.……이것이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 기적일 수 있을까. 이런 기적을 일으키는 책보다 위대한 인류의 유산이 달리 또 있을까.’

그의 청춘을 움직였던 고전들을 중년의 나이에 다시 읽은 저자는 위대한 고전이 제시하는 새로운 비전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에게 그것은 기적이 아니었을까?

 

<청춘의 독서>는 이 책을 접하게 된 계기, 그 당시 던진 화두와 마음에 닿았던 책의 내용, 작가의 삶과 정치적 배경, 재독을 통한 새로운 접근과 유시민의 정치적 소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정치인 유시민의 성장과정과 정치적 소망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소개한 책들이 다분히 불합리한 사회상을 배경으로 이를 우회적으로 고발하거나 비판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이름을 처음 알린 <거꾸로 읽는 세계사>처럼 이 책을 거꾸로 읽었다. 왠지 그래야 이 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나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그의 진심이 담긴 작은 고백을 먼저 접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지쳤다. 존경했던 이들은 먼 곳으로 떠났고, 사랑하는 동료들은 시대의 삭풍에 떨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겠으나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야 할지 몰라 번민한다. 내가 받들고자 하는 사람들은 나를 외면하고, 같은 방향을 보고 걷는 사람들과도 손을 잡기가 어렵다. 가끔 나는 내 자신이 물 밖으로 팽개쳐진 물고기 같다고 느낀다. 다른 생각 없이 그저 잘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하면서 나에게 친숙한 작은 공동체 안에서만 머무르고 싶다.……“역사와 사회의 진보에 대한 믿음은 어떤 자동적인 또는 불가피한 진행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 발전에 대한 믿음”이라고. 이 믿음만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1. 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들은 숨기고 마지막에 조심스럽게 꺼내본다. 14번째 위대한 고전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유시민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책이다. 랑케를 숭배하며 정체된 수동적인 역사관을 가졌던 저자가 이 책을 읽고 개안의 기적을 일으켜 역동적인 진보적 역사관을 가지고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앎과 삶의 일치를 꿈꾸던 그의 인생에 드리워진 식자우환과 치열한 투쟁의 시작이었다.

대학시절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처음 접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리포트에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끝없는 대화”라고 적었던 기억이 있다. 생각 있는 대학생이라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하는 도서목록 손가락 순위 안에 들었기에 억지로 읽어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유시민이라는 안경을 쓰고 본 <역사란 무엇인가>는 달랐다. 역사는 진보하는가? 진보한다면 어떻게 진보하는가?

“진보는……이성의 이름으로 그 제도와 그것을 떠받치는 공공연한 또는 은폐된 가설에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한 인간의 대담한 결의를 통해 이루어졌다.”

문득 곪아 섞어 아프다고 외치는 정치와 세상에 귀를 막고 듣기 좋은 말과 보기 좋은 글만 찾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2. 하인리히 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보이는 것은 진실인가? 나의 생각은 정말 내 것일까? 언론의 왜곡 또는 허위보도로 인한 피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독재시대 어용언론이었을 때에도 그렇지만 인터넷을 통한 자유로운 담론이 가능하다고 믿는 지금도 그렇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고의적인 거짓 소문 유포가 더 용이한 실정이기도 하다. 미네르바, 신정아 사건 등을 보아도 언론의 타겟이 된 개인의 인생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난도질당한다. 뵐은 스스로 경험한 체험을 바탕으로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라는 작품을 통해 거대 언론<빌트>에 대항한다. 책의 주인공 카타리나는 결국 차이퉁의 기자를 총으로 쏘아 죽인다. 개인의 명예에 대한 살해는 생명을 강제로 끊는 살인보다 어떤 면에서 더 치명적이다. 그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음과 양으로 피해를 입게 되며 살아도 죽은 것보다 못한 삶을 이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유시민, 그는 이 소설을 빗대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통해 언론이 단지 피의자였던 한 개인의 헌법상의 모든 권리를 어떻게 앗아갔고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에 대해 통탄하고 신문사와 대기업의 언론 독점을 크게 우려한다.

 

3.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

 

문명이 눈부시게 진보해도 왜 빈곤은 사라지지 않는가? 온건한 급진주의자 헨리 조지는 그 이유를 ‘경제활동과 인간 생활의 중심지 땅을 가진 사람이 모든 진보의 열매(지대)를 독식하기 때문이다’라고 보았다. 조지는 토지단일세 운동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세상에 실현하려고 죽은 그날까지 부단히 노력한 실천주의자였다. 그는 사유재산제는 인정했지만 토지에 대해서만큼은 부정했다. 만인이 땅을 이용할 수 있는 자연법적인 공유의 권리를 주장했고 토지를 개인이 소유해 세습하는 것을 반대했다.

“토지 사유는 커다란 맷돌의 아랫돌이다. 물질적 진보는 맷돌의 윗돌이다. 노동계층은 증가하는 압력을 받으면서 돌 사이에서 갈리고 있다.”

유시민은 용산참사도 무한정 토지세습을 전제로 한 화려한 마천루의 희생물로 보았다. 진실을 알고도 눈감는 자, 진리를 알고도 추구하지 않는 자,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부끄러운 나의 자화상이다.

 

4. 사마천의 <사기>

 

이 장에서 유시민은 좀 더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한다. 그는 <사기>에서 유방과 한신에 주목했다. 토사구팽의 주인공 한신은 유방을 황제로 만든 일등공신이었음에도 역모의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하였다. 저자는 그 비극적 죽음의 이유를 소하와 숙손통과는 달리 역사에서 일어나는 역할 전도 현상에 대한 적응의 실패로 보았다. 전쟁 시 혁혁한 공을 쌓은 신하라 할지라도 시대가 바뀌어 도전과 응전에 대한 성공의 주체가 바뀌면 여전히 구식으로 임하는 자는 실패할 수밖에 없고 그 대표적인 예가 한신이라고 보았다. 아무튼 유방 사후 여태후 시대에는 유방과 한신의 노력 덕분에 태평성대가 왔고 그는 평화의 시기가 몇 백 년에 지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맹자, 공자 같은 성인도 이루어내지 못할 위대한 일이라고 찬양한다.

‘정치는 위대한 사업이다.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야수적 탐욕과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성인의 반열에 오르지 못할지라도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것. 유시민이 바라보는 정치의 모습이다.

 

5. 리영희, <전환시대의 논리>

무엇으로 그 사람을 지식인이라 부를 수 있는가? 신념과 지조, 진리를 지키기 위해 생을 포기할 정도로 고난을 감수하는 용기. 바른 인식과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의지.

리영희 선생은 벌거벗은 임금을 보고 벌거벗었다고 말할 수 없었던 베트남 참전의 실상을 폭로하면서 이제 그 권리와 의무를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지식인으로서 의무를 절감했던 예전의 대학생들과 달리 지금의 대학생들은 좁은 취업의 문을 뚫기 위해 청춘을 바친다. 벌거벗은 임금은 곳곳에 넘치지만 지식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유시민은 그것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일까?

 

6.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선한 목적은 악한 수단을 정당화하는가? 라스꼴리니꼬프는 전당포 노파와 그의 배다른 여동생 리자베따를 살해한 후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선한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 악한 수단을 사용하는데 따른 양심의 가책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유시민이 이 책에서 새롭게 주목한 두냐를 봐도 선한 목적은 선한 방법으로만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스탈린과 히틀러 등 비범한 소수가 다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는 세상이 가장 바람직한 사회라는 것을 정치인들이 깨닫게 되는 날이 올까?

 

그밖에

 

부자체가 목적이고 과시적인 소비를 일삼는 유한계급과 그들이 이루는 보수주의 한계를 담은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인간을 이기적 본능에만 충실한 존재가 아닌 이타적인 자기 희생을 추구하는 도덕적인 존재로 바라본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품위를 지켜내는 슬퍼서 더욱 아름다운 인간상을 그려낸 알렉산드로 솔제니친의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불합리한 조국의 현실과 두 개의 조국 사이에서 번민하다가 제 3국을 택하고 자살한 대한민국 청년의 슬픈 자화상을 담은 최인훈의 <광장>

 

의를 위해 생을 버린 진정한 보수주의자이자 역성혁명론을 제창한 아름다운 항성 맹자의 <맹자>

 

차르의 학정 속에서 프랑스의 자유혁명 정신에 바탕을 둔 창작 활동을 하다가 어이없는 결투로 38살에 생을 마감한 알렉산드르 푸시킨 <대위의 딸>

 

전염병의 창궐과 자선의 억제를 통한 사망률 증가와 사회권적 기본권과 성의 예방적 억제의 부정이라는 편견의 감옥에 빠진 안타까운 천재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

 

과학의 옷을 입은 역사 종말론의 창시자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등등 주옥같은 고전들이 유시민의 눈과 입, 그리고 손을 통해 새롭게 재해석되고 그로인한 산물이 그에게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같은 경이로움을 가져다주었음에 분명하다.

당시에는 세상을 바꾼 위험한 생각들이었으나 후대에 가장 위대하고 필요한 사색으로 자리매김한 <청춘의 독서>안의 사랑스러운 고전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입력 2010-01-06 오후 8: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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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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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독서는 책과 대화하는 일이라는 글에 공감합니다.:) [2011-03-25 오후 12:4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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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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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님과 비슷한 스타일로 책을 고르는데^^
같은 책을 읽은 느낌도 비슷하네요..
잘 읽고 갑니다. [2011-03-25 오전 10: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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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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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01-11 오후 3:4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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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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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이 지성인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의 유시민이라면 그릇을 키우지 않으면 현재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다. 그는 항상 뭔가 새로운 조직을 통해 조직을 혁신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진정한 혁신은 현재의 부조리한 조직을 혁신시키는 것이다. 유시민이 보다 훌륭한 정치인이 되려면 국가를 혁신시키려고 하기 이전에, 아니 내가 권력을 잡으면 국가를 혁신시키겠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민주당을 혁신시키야 한다. 국민은 그가 민주당을 혁신시키는 모습을 보고 그의 정치역량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손이 아프다고 손을 잘라버리고, 다리가 아프다고 다리를 잘라버리고 머리가 아프다고 머리를 잘라버리면 무엇이 남겠는가? 왹 죽음만이 남는다. 우리 모두가 대한민국의 국민인 것이다. 한걸음씩 차분하게 걸으면 비로소 행운의 여신이 다가올 것이다. 대기는 만성이다. [2010-01-08 오전 8: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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