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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엄마, 책 읽어주는 선생님
입력 2010-03-08 오후 2:39:25
월간경제노트구독
얼마 전, 2년 이상 서로 연락하지 못하고 지냈던 대학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러저러한 안부들이 오가고 난 후 선배는 뒤늦게 본 외동딸이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데 그 동안 영어 공부에 전혀 신경을 안 썼더니, 아이가 남보다 뒷 쳐저 영어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에 큰 심리적 부담과 거부감을 느끼고 있고, 선배 부부도 막막해서 도움 말을 좀 얻을까 싶어 전화를 했단다.
 
요즘은 초등 2학년밖에 안된 어린이들도 영어를 새로 시작하는 것이 너무 늦은 시기라는 생각에 아이도 부모도 영어 학습을 위한 초고속열차 같은 것을 알아보고 싶어진다.  
그 선배에게 내가 해 준 영어 교육의 비법은 간단했다.
아이가 관심이 있어할 내용과 그림의 영어 동화책을 구입해서 매일매일 읽어주는 것이었다.   
 
모국어로 어느 정도 수준의 지적 성장이 이루어진 아이들이건, 아니면 모국어 외국어를 구별 못하는 기저귀를 찬 아기들이건 간에 기본을 만들지 않고는 영어 공부란 끊임없이 A/S를 해야 하는 골치덩어리가 되기 쉽다.
처음 영어를 접할 때는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은 알파벳 26자를 외우고, 나름 버터섞인 발음으로 주변의 사물들에 영어 이름들을 대며, 영어 노래 몇 개 정도는 쉽게 외워 부르면서 어학에 비상한 재능을 보이던 아이들도, 초등학교 입학 즈음해서는 누구나 파닉스를 거치고, 초등학생 시절 외국 출판사에서 나온 문법교재를 통한 작문과 수십개씩 버캡 외우기를 하고도, 이~상하게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그 모든 찬란한 영어 실력은 어데로 가고 시험 준비라는 이름 하에 과거 우리가 했던 교과서 중심 내신영어와 성문 영어가 고개를 들고, 그 이후에는 수능 쪽집게가 다시 따라온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니…대학에 가서는 원서 번역에 허덕이면서 인터뷰용 영어 회화 학원에 토플, 토익 등으로 대변되는 수 없는 취업용 영어 그리고 막상 취업을 하고 나서는 다시 영어 프리젠테이션 학원과 이메일 영어 등 아무리 뛰어도 잡히지 않는 영어 뒤만 쫓다가 영어 스트레스 끝날 새 없이 나이가 들어가는 느낌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 대해서 더 많이 알려면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 상대를 해 보는 것이 사람의 생물학적 신체부분을 알고, 두뇌구조를 알고, 심리학을 공부하고, 인류학을 학습하는 것 보다 나은 해답을 내 놓는 것처럼 영어도 알파벳을 알고, 단어를 알고, 문법을 알고, 시험 준비용 영어를 공부하는 식의….각 분야적 영어를 하나하나 배워 나가면 언젠가는 그 전체에 관한 통합적인 인사이트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타인의 의미전달이라는 본질에 관한 안정되고 즐거운 경험 속에서 나도 모르게 쌓이는 감각이 각 부분에 대한 자기 발생적 동기가 되고 영어에 관한 자연스러운 선순환으로 이끄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내용에 힘을 실어주는 두 권의 책이 있다.The Read-Aloud Handbook : 6th Edition 
하나는 짐트렐리즈글/ 눈사람 옮김의 “아이의 두뇌를 깨우는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원작은 Read Aloud Handbook)이고 또 다른 한 권은 교육자이자 ‘Hattie and the fox’, ‘Where is the green sheep?’, ‘Time for bed’ 등 국내에도 널리 소개된 동화책의 저자이기도 한 멤 폭스의 “아이랑 소리내어 책 읽는 15분의 기적” (Reading Magic)이다.
 
이 두 권의 책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부모이자 교육(특별히 언어의 아카데믹한 역할을 강조하는 리터러시) 전문가들의 가장 근원적이면서도 확실한 조언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부모 자식의 심리, 정서적 관계 향상이라는 기본 바탕 위에 영미권에서 태어났다면 누구나 하는 생활영어가 아닌 사회가 요구하는 전문인으로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의미 소통의 영어능력 배양에 관심을 두고 있다. 
 
내가 이 책들을 처음 접한 시기는 이미 우리 아이들을 꽤 키우고, 수년의 영어 교사로서 경력을 가진 후였지만, 경험을 통해서 진심으로 공감을 하는 내용이었기에 그 이후 수 많은 선생님들에게 부모님들에게 첫 만남에서부터 권하는 추천도서목록 1순위에 오랜 시간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사실 나는 말재주가 없고 기억력도 좋지 못해 쉴 새 없이 조잘조잘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성격이 되지 못한다. 아이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어도 그 뻔한 이야기의 결말은 얼마나 헷갈리는지… 수도 없이 보고 듣고 읽은 신데렐라의 이야기도, 팥죽할멈 이야기도, 해와달이 된 오누이도… 막상 기억해서 들려 주려면 순서도 뒤죽 박죽 재미있는 디테일은 어디로 다 사라지고 뼈대만 앙상한 줄거리를 더듬기도 버거워 수 없이 중단해야 했다. 강의나 수업을 할 때에도 몇 시간이고 물 흐르듯이 쉽게 이끌어가는 분들과 달리 비교적 자세히 해야 할 말들을 미리 정리해가야 하는 편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어렸을 적 미국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바쁜 신랑 뒷바라지 하며 두 아이들을 키우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산책 삼아 유모차를 끌고 동네 작은 시립도서관에 가서 그림이 예쁜 동화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돌아오는 길에 두세권 빌려와서 잠들기 전에 또 읽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대한민국처럼 수 많은 After Reading Activity에 관한 정보 공유가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손재주도 없어서 그저 소리 내어 읽기만을 반복했는데, 아이들과는 나도 모르게 “아~ 이런 상황 우리가 읽은 적이 있었지..!”하며 눈빛을 주고받는 공감대가 생기고 외우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표현들, 스펠링을 외우지 않고도 용감하게 영어의 소리를 encoding하는 자신감과, 문법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이 문장은 왠지 어색해,  등등.. 소리 내어 책 읽어주기가 바탕이 되어 생긴 영어 감각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비록 스펠링이며 문장을 이루는 문법이 틀려도 영어로 자신의 독특한 문체가 드러나는 글을 쓰는 작은 아이를 보면서 이것은 내가 평생 영어 공부를 한다고 해도 가질 수 없는 마법을 보는 느낌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다른 과목과 다르게 국어와 영어는 1등의 성적이 크게 중요한 과목이 아니다.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나의 의견과 정서를 표현하는 동반자로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로 앞으로의 평가도 점점 더 그렇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더군다나 부모와 교사가 해 주는 Read Aloud의 장점은 그 혜택이 아이들에게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읽어주는 사람에게도 그 전에는 미쳐 알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고 좋아지게 되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번 글에서 나는 스스로를 영어 교육에 관해서 보기 드문 행운아였다라고 했었다. 그리고 나를 행운아로 만들어 준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한 가지 노력은 바로 집과 교실에서 “Read Aloud-소리 내어 책 읽기”를 한 것이다.
 
앞서 소개한 두 권의 책을 읽어본다면 책을 읽어 주는 방법을 비롯해서, 읽어 주기 좋은 책 고르는 법, 추천 도서 리스트 등 많은 내용이 있지만, 개인적 경험 상 외국어 책을 읽어주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를 이야기 하고 마무리 하고자 한다.
 
첫째, 글감의 길이나 수준을 아이의 외국어 실력에 너무 맞출 필요는 없다. 이미 학령기에 들어있는 아이에게 너무 쉬운 단어, 반복되는 쉬운 문장으로만 이루어진 책을 줄 경우 아이들은 흥미를 느낄 수 없다. 아이가 익숙하고 좋아하는 주제와 내용의 책을 고르게 한 후 본격적으로 읽어주기 전 책 속의 그림이나 사진을 보면서 어떤 내용일 지 우리 말로 스스로 상상하며 이야기 하게 한 후 본격적으로 읽는 과정에서 글자가 아닌 힌트가 되는 그림이나 장면을 짚어가며 책을 읽어준다면, 영어를 다 알아듣지 못한다 해도 대부분의 내용은 이해가 되기 마련이다. 첫번째 읽기에서 책의 큰 줄거리만 파악했다면 성공이다. 자세한 부분의 이해는 차차 시간을 두고 두번, 세번째 읽을 때, 혹은 며칠 후 식사시간에 자연스럽게 질문하면서 이해시켜주면 될 일이다. 영어책-특별히 동화책-은 공부를 위한 교재가 아니다.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책이고 이해를 돕는 친절한 그림과 디자인 등 힌트들이 가득하다.
 
둘째, 아이가 골라온 책을 읽어주기 전에 부모나 교사는 미리 최소한 두 세번은 꼼꼼히 읽어봐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교사도 내용을 모르는 책을 잘 읽어 줄 수는 없다. 어느 그림이 중요한 힌트를 제공하는지, 어떤 분위기와 목소리 톤이 내용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지, 결론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어디에서 숨을 멈추고 기다려야 할 지, 읽기 전에 어떤 대화를 나누면 읽는 페이지 마다 아이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그게 한국말로 무슨 뜻인데?’ 를 연발하지 않고 물이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책과 그림에 몰입할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 15분 아이와 나란히 기대 앉아서 책을 읽어주는 것은 분명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방법이다. 하지만 결코 꾸준히 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앞서 소개한 두 책의 저자들은 아들의 얼굴에 수염이 날 때까지는 계속해야 할 일이라고 하는데… 부끄럽지만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이러저러한 핑계로 언제부터인지 모든 책읽기를 아이들에게만 떠맡기고 있다. 오늘의 장황한 글은 솔직히 여러 링서스 가족 분들께 오늘부터라도 다시 책 읽어주는 엄마가 되겠다 다짐을 하는 약속의 의미로 삼고 여러 분들이 그 마법의 시간에 동반자가 되시기를 초청하는 마음이다. 
 
입력 2010-03-08 오후 2:3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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