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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리더의 성공과 실패] 인텔의 창립자, 밥 노이스
입력 2004-02-02 오전 12:00:00
월간경제노트구독
아이오와 주 시골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밥 노이스는 대부분의 청년기를 시골에서 보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노이스는 무척 대담하고 당찬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항상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했으며, 자신감에 넘쳐 있었죠. 당시 농촌의 보수적인 분위기와는 섞이기 어려운 기질이었죠.

자신의 고향에서 대학을 나온 노이스는 1948년 MIT로 진학해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이때 노이스는 벨 연구소에서 개발된 트랜지스터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됐고, 트랜지스터에 관한한 최고의 전문가가 됩니다.

MIT를 졸업한 후, 노이스는 지난 시간 살펴 본 윌리엄 쇼클리가 설립한 쇼클리 반도체에 입사합니다. 쇼클리 반도체의 입사는 노이스와 윌리엄 쇼클리의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입사, 갈등, 그리고 창립

노이스와 윌리엄 쇼클리는 둘다 나서기 좋아하는 자기 과시형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둘 사이에 충돌할 여지가 많은 셈이었죠. 안 그래도 대인관계에 문제가 많은 쇼클리는 노이스를 비롯한 연구진들과 사사건건 다투었고, 결국 노이스와 회사의 핵심 연구원 7명은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이들은 쇼클리 반도체에 대적할 경쟁사를 세우기로 결심하고 노이스를 리더로 추대합니다.

쇼클리의 “8명의 배신자”들은 1957년 밥 노이스를 중심으로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실리콘 밸리, 즉 캘리포니아 마운틴 뷰 지방에 페어차일드 세마이컨덕터(Fairchild Semiconductor Corporation)을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페어파일드의 경영인로 임명된 밥 노이스가 회사의 모든 경영과 관리를 책임지기 시작했죠.

밥 노이스, 인간 경영의 화신

노이스는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인사 정책과 경영 시스템을 페어차일드에 도입해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노이스가 이끄는 페어차일드에는 전통적인 계급 구조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 상징적인 예로, 페어차일드에는 노이스 자신을 비롯한 고위직 임원의 전용 주차 공간과 식당이 존재하지 않았죠.

또한, 페어차일드에는 복장 제한이 없어 누구나 원하는 복장으로 회사에 올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이런 자유로운 복장으로 출퇴근이 가능한 회사는 미국 전역을 살펴봐도 흔치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노이스는 같은 사무실에 있는 문을 모두 제거하고, 어깨 높이의 ‘파티션’을 설치해 모두가 공평한 크기의 공간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후에 페어차일드가 엄청난 성공을 거둬 노이스를 백만 장자로 만들었을 때도 노이스는 파티션으로 나눠진 사무 공간을 직원들과 그대로 공유했습니다.

노이스는 직원들이 업무에 필요한 물건을 언제든 구입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으며, 젊은 엔지니어들이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도록 권장했습니다. 그는 어떤 종류의 아이디어라도 항상 들어줄 가치가 있다는, 위대한 발명과 발견은 항상 엉뚱한 아이디어에서 비롯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노이스는 또한 당시 생각치 못했던 파격적인 인사 정책을 고안해 냅니다. 바로 스톡 옵션이었죠. 스톡옵션은 회사에 속한 모든 이들이 회사의 부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해준 제도적 장치였습니다. 노이스는 회사의 주식을 사장에서부터 경리까지 회사의 모든 구성원에게 나눠줌으로써 회사의 성공이 곧바로 그들의 이익과 연결되도록 했습니다. 노이스는 이 스톡 옵션을 통해 회사의 모든 직원들을 하나로 엮길 원했습니다.

사내의 자유로운 복장, 파티션으로 나눈 사무실, 스톡 옵션 등, 노이스의 관리 스타일은 오늘날 실리콘 밸리 기업들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회사의 정책과 문화로 자리 잡습니다. 즉, 노이스는 현재 대다수의 IT 회사들이 도입한 경영 방식과 정책, 그리고 직장 문화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죠.

밥 노이스, 반도체 시장의 개척자

노이스는 직원 관리 뿐만 아니라 기술 개발과 사업 운영에서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이전까지 컴퓨터 관련 산업은 적은 수량으로 높은 마진을 매겨 고수익을 올리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이스는 반도체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해, 낮은 가격으로 다량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박리다매 판매 방식을 채택합니다. 노이스는 반도체 산업에서 경쟁자들을 제치기 위해선 누구보다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춰야 한다고 믿고 있었죠.

그러나 이전까지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선 모든 부품을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조립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대량 생산을 하기엔 한계가 있었습니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노이스는 기존의 조립 방식에서 탈피, 하나의 실리콘 조각 위에 여러 트랜지스터과 부품을 결합하는 새로운 반도체 제조 기술을 개발합니다.

노이스의 새로운 제조 기술이란 바로 ‘집적 회로(integrated circuit)’였습니다. 집적 회로는 하나의 칩 위에 금속 선을 ‘인쇄’ 해서 그 위에 트랜지스터를 비롯한 모든 부품을 얹는 기술입니다. 이 집적 회로가 발명된 뒤로 반도체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 졌으며, 페어차일드는 단일 품목의 생산량을 크게 늘려 더 많은 수요를 충족시키고 가격은 더 떨어뜨리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페어차일드의 공동 창립자였던 고든 무어(Gordon Moore)는 당시, 같은 사이즈의 실리콘 위에 들어갈 수 있는 트랜지스터의 수는 18개월마다 두 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을 내놓습니다. 이 무어의 법칙은 오늘날 컴퓨터 CPU의 성능이 (가격은 그대로 유지된 채) 18개월마다 2배씩 향상된다는 이론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전자 제품은 시간이 흐를수록 성능이 좋아지고 가격은 하락한다’는 전통이 바로 노이스의 페어차일드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죠.

시장 경쟁의 심화, 그리고 인텔(Intel)의 탄생

그러나 1960년대 말부터 실리콘 밸리에는 실리콘 산업의 경제적 이익을 노린 투자자들이 몰려들었고, 페어차일드는 이들 투자자들로부터 회사의 인재들을 빼앗기는 상황을 맞이합니다.

결국 페어차일드의 창업자인 노이스와 무어, 그리고 앤드류 그로브(Andrew Grove)는 1968년 페어차일드를 떠나 다시 그들만의 회사인 Integrated Electronics, 즉 인텔(Intel)을 설립합니다. 페어차일드의 기술과 경영 방식을 그대로 계승한 인텔은 1970년 최초의 반도체 메모리 칩인 RAM(Random Access Memory)을 생산했으며, 1971년엔 테드 호프(Ted Hoff)의 노력으로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microprocessor)를 만들어 냅니다.

마이크로프로세서(microprocessor): 집적 회로이면서 정보 저장은 물론 논리 연산까지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칩.

마이크로프로세서에는 컨트롤 유닛(control unit: 제어 장치), ALU(arithmetic-logic unit: 산술/논리 연산 장치), I/O 유닛(입출력 장치)을 포함하고 있으며, 외부적으로 반도체 메모리와 같은 부가적인 칩들을 연결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마이크로프로세서는 독자적인 제어 계측 능력을 갖춘 집적 회로, 즉 집적 회로의 ‘최상위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이크로프로세서가 과학 산업에 끼친 영향력은 트랜지스터 만큼이나 지대합니다. 손 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크기의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컴퓨터를 더 이상 ‘냉장고 크기’가 아닌, 한 사람이 들고 옮길 수 있을 정도의, 그리고 일반 상점에서 판매할 수 있을 정도의 작고 실용적인 제품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또한 마이크로프로세서가 탄생한 뒤로 그저 기계의 부품만 생산하던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은 스스로 ‘완성된 제품’을 생산할 능력을 갖춥니다. 즉,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이용해 전자 단말기나 PC와 같은 하나의 완성된 첨단 기기를 IT 기업 스스로의 힘으로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이죠.


노이스의 업적

이렇듯 노이스는 세계 최대의 기술 과학 단지인 실리콘 밸리의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노이스는 그곳에 과학 단지가 커갈 수 있는 기술적인 입지를 다졌을 뿐 아니라, 그곳 기업들의 경영 방식과 철학에 ‘뿌리’를 제공한 사람으로 인정 받고 있습니다.

노이스가 차지한 이 모든 부귀와 영광은 원래 쇼클리의 차지가 될 수 있었던 것들입니다. 집적 회로의 탄생이 가능케 된 것도 원래는 트랜지스터의 발명 덕분이었고, 현재의 실리콘 밸리 지방에 트랜지스터 기술을 가져온 것도 원래는 쇼클리였으니까요. 그러나 쇼클리는 자신에게 찾아온 ‘거대한 가능성’을 지나친 오만과 편집증, 그리고 자기 중심적 사고 때문에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실리콘 밸리의 번영은 쇼클리가 신봉했던 엘리트 지배체제나 높은 IQ 때문에 가능했던 것은 아닌 듯 싶습니다. 쇼클리는 자신의 밑에 ‘높은 IQ’의 직원들을 많이 두었지만 그들을 통해 얻은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잘못된 리더십이 낳은 엄청난 낭비 였죠.

페어차일드와 실리콘 밸리의 성공은 상당부분 노이스와 같은 이들의 탁월한 리더십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노이스의 페어차일드는 IQ 높은 인재를 찾는 것보다는 회사 구성원들이 회사를 위해 보다 높은 생산성을 발휘하도록 하는데 역점을 두었습니다. 노이스의 회사는 훌륭한 리더십으로 조직과 개인을 결속시키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는 곧 조직의 높은 생산성으로 이어졌던 것이죠.
입력 2004-02-02 오전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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